이권효·대구경북취재본부장 |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14일)을 맞아 경북 구미시는 11일부터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뮤지컬과 연극, 강연 등 10여 가지 행사를 열고 있다. 그의 고향인 구미가 박 전 대통령 탄생 100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지상정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역사 속 인물을 그리는 추모가 부가가치를 낳기 위해서는 옛날이야기에 그쳐서는 부족하다.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되는 추모가 될 때 현재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수년 전부터 탄생 100돌 기념행사를 추진해 왔으나 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 때와는 시대와 사회 상황이 근본부터 변하고 국민의식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릿고개나 새마을운동, 독일 광부와 간호사, 산업화 주역 같은 1960, 70년대 이야기에 맴돈다.
박 전 대통령의 공로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산업화 주역’이라는 점이다. 구미시 공식 입장도 “박 대통령은 5000년을 이어온 가난을 몰아내고 산업화를 이뤘으며 오늘의 발전도 그 산업화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과 평가는 산업화의 뜻을 매우 좁게 보는 데서 비롯된다. 산업화는 박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가 추진한 산업화 정책은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지식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처럼 산업화는 계속 진행되며 나아가는 것이지 특정시대 특정인에 의해 완성되는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 이전까지 5000년 우리나라 역사를 ‘가난의 역사’로 단정하는 것도 지나치고 위험한 발상이다. 단군 이후 우리 역사는 강인함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빛나는 문화적 결실을 쌓은 시기도 많았다. 새마을운동도 박 대통령이 창시한 게 아니라 당시 일부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보면서 정책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시대에 박 대통령이 추진한 당시 산업화만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면 국민 다수의 가슴에 스며드는 감동과 비전을 주기 어렵다. 네트워크와 소통, 협치가 중요한 시대에 ‘민족의 영도자’ 식의 리더십도 와 닿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과거를 단순하게 조명하는 수준을 넘어 그의 삶이 지금과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하나라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좁은 고향을 넘어 나라 전체의 공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권효·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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