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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오늘과 내일/김갑식]야구, 그리고 광주의 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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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갑식 문화부장


‘야생야사’, 야구에 죽고 사는 야구팬들은 요즘 사는 게 권태롭다. 호랑이와 곰이 만난 최초의 단군시리즈는 KIA 타이거즈가 판타스틱4를 앞세운 두산 베어스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렸다. 야구에 관한 대화라면 부자(父子) 관계에 있어야 하는 존칭과 화법의 예의까지 때로 무시하는 게 우리 집 분위기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야구를 처음 접하면서부터 응원해온 ‘인생의 팀’이 맞붙어 희비가 제대로 엇갈렸다.

누가 시즌 뒤 계약과 트레이드 소식이 많은 이 시기를 뜨겁다며 스토브(stove) 리그라고 했는가. 이따금 빅뉴스로 휴대전화의 가족 대화방에 문자 불꽃이 튀지만 지루한 겨울잠일 뿐이다. 한 시즌에 한국은 144경기, 미국 메이저리그는 장장 162경기를 치른다. 광적인 팬들의 라이프사이클은 여기에 맞춰진다. ‘야구 금단현상’이 일어날 지경이다.

야구 탓일까. 8월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과 최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광주 생활은 어떠세요?” “월세살이야. 광주 사람 되려니 그동안 바빴어.” “거기 야구 때문에 요즘 분위기 좋죠?” “야구가 왜?” “8년 만에 11번째 우승인데….”

이럴 수가, 대화가 헛돌았다. “인구 147만 명 도시에 100만 관중이 들었어요”라는 말에 “대단하다. 야구가 그렇게 인기야? 야구 알아야 광주 사람 되겠구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국립발레단에도 그 전성기를 연 판타스틱4가 있었다. 최 단장을 리더로 발레리나 김주원 김지영과 발레리노 이원국 김용걸이다. 1997년 러시아에서 갓 돌아온 10대 발레리나들이 파격적으로 주역 무용수에 발탁됐다. 이원국은 남성 발레의 대표작 ‘스파르타쿠스’의 2001년 국내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발레리노의 교과서’라는 명성을 얻었다. 김용걸은 국립발레단을 발판 삼아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했다.

KIA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 키워드가 형님 또는 동행이라면 최 예술감독의 그것은 엄마 혹은 긍정이다. “우리 애들이 최고야. 얼마나 잘하는데…”라는 한없는 긍정과 엄마의 포용력으로 ‘양 김’ 발레리나를 세계 정상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국립발레단 재단법인화 이후 정부 관리와의 쉽지 않은 예산 싸움도 그의 몫이었고, 해설이 있는 발레나 지방 소도시를 찾는 발레 대중화의 시발점도 그였다.

특히 러시아의 세계적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초빙해 스파르타쿠스를 초연한 것은 우리 발레사의 한 분수령이 됐다. 지나치게 모신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남성 발레의 가능성이 확인됐고, 외국 안무가와의 협업도 잦아지면서 우리 발레의 수준 자체가 높아졌다.

판타스틱4 중 김주원 성신여대 무용과 교수의 기대는 이랬다. “최태지란 이름이 주는 효과가 정말 커요. 국립의 주역이던 이은원이 규모가 떨어지는 워싱턴발레단에 간 것도 줄리 켄트 단장 때문이죠. 성신여대도 그렇고, 내년 광주 오디션에 참가하겠다는 재능 있는 학생이 많아요.”

방송 활동에 이어 최근 연극 무대에도 섰던 그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토크&콘서트’를 갖는다. 그는 “40세가 된 발레리나의 춤도 보여주고 얘기도 나눌 생각”이라며 “(최태지) 단장님이 부르면 저희가 가야죠. 패밀리인데”라고 했다.

17년 전 김지영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그는 “결혼은 서른 넘어서”라고 했지만 이제는 “55세?”라고 한다. 다시 혼자서 호호호 웃는다. 여심(女心)도 발레도 미스터리다.

어쨌든 발레의 판타스틱4는 봄날 광주에서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 야구에 이어 광주의 ‘춤바람’을 기대해 본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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