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
조조의 장남으로 제위에 오른 조비는 동생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용서치 않겠다고 하였다. ‘콩을 깎으려 콩깍지를 불태우고 메주를 걸러 즙을 만든다. 콩깍지는 가마솥 아래서 타고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 급한가.’ 조식의 시에 감동한 조비는 동생을 죽이려던 마음을 거둔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일컫는 칠보지재(七步之才)라는 말이 이 일에서 생겼다.
조조 조비 조식 삼부자는 모두 문학적으로 뛰어나 삼조로 불리며, 중국 문학사에서 후한(後漢) 시대 말기 건안(建安) 문학의 주요 인물들로 평가받는다. 북송 시대의 소식(소동파), 소철 형제와 아버지 소순도 삼소로 불린다. 당송팔대가 여덟 명 가운데 세 명이 이들 삼부자다. 근현대에도 루쉰(본명 저우수런)과 저우쭤런 형제가 중국에서 새로운 문풍(文風)을 이끌었다.
19세기 프랑스의 형제 소설가 에드몽 공쿠르와 쥘 공쿠르는 합작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동생보다 26년을 더 산 형 에드몽이 남긴 유언에 따라 제정된 공쿠르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상이 되었다. 화가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들 형제를 부러워했다. ‘얼마나 멋진 이들이냐!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된다면 그들과 같아질 수 있지 않겠느냐?’(1885년 12월 28일)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작가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일명 ‘그림동화’), ‘독일 전설집’, ‘독일어 사전’ 등을 함께 편찬했다. 형제는 괴팅겐대 교수 생활도 함께했고 베를린의 프로이센 아카데미에도 함께 초청되었다. 형제 작가들의 관계가 이렇게 늘 협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소설가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형제는 경쟁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 김원일 김원우, 비평가 황현산과 비평가·시인 황정산, ‘형제 시집’(2016년)을 내기도 한 시인 박용재 박용하 등이 형제 작가들이다. 우리 근대 조각의 개척자 정관 김복진은 문예이론과 미술평론, 연극 등에서 활동했다. 김복진의 동생 팔봉 김기진은 형과 함께 연극에 참여하고 소설가, 비평가로 활동했다. 정관 김복진 미술전이 올해로 21회, 팔봉비평문학상은 28회째다. 형제 문예인 각각을 기리는 행사와 상이 이처럼 꾸준히 시행되어 온 것은 국내외에서 공히 드문 일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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