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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사우디·이란 사이 낀 레바논, 수니·시아파 전쟁터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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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총리 사우디서 사임 뒤 잠적

사우디 빈살만 ‘작품’설 흘러나와

대 이란 강경노선 밀어붙일 가능성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오랜 지원

헤즈볼라 측 “사우디가 선전포고”

틸러슨 “레바논서 대리전 안 돼” 경고

지난 3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식당에서 사드 하리리 총리가 레바논을 방문한 프랑스와즈 니센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오찬을 함께했다. 식사 도중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은 하리리 총리는 니센 장관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보좌진도 동행하지 않은 채였다.

그는 다음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TV 방송에 나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레바논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정치적 통제로 고통받고 있다”고 이란을 맹비난하면서다. 그날 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은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공항 인근 상공에서 격추됐다.

할리우드 첩보 영화에 나올 법한 사건들이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리리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퇴 선언의 파장은 레바논을 중심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련의 사태가 이슬람 최대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국 이란 간의 오랜 경쟁과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대통령 “하리리, 사우디서 가택 연금”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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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무대가 된 레바논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른 적이 있는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사는 이발사 후세인 카이레딘은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종파 간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육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10일 “하리리 총리가 사우디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도 “사우디가 레바논에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사우디도 지난 9일 레바논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헤즈볼라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다”며 긴급 출국령을 내렸다. 친 사우디 국가인 바레인과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도 자국민 철수령을 내리면서 전쟁 위기론이 고조됐다.

레바논 사태가 달아오르자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레바논 정부의 합법적인 군 외에 다른 외국 군대나 민병대, 다른 무장세력이 레바논에서 차지할 역할은 없다”고 밝혔다. 레바논을 대리전 장소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우디와 이란 측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틸러슨 장관은 “하리리 총리가 사임하더라도 레바논으로 귀국해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지난 9일 밤 UAE에서 사우디로 비공개로 이동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레바논 상황을 논의했다. 그는 “하리리 총리를 간접 접촉했다”고 밝혔다. 과거 레바논을 식민 통치했던 프랑스의 대통령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해소해보려고 나선 셈이었다.

중동에서 전쟁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갈등이 커진 것은 시아파 이란이 세력 확대 움직임을 가속화하면서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의 새 리더로 32세의 빈살만이 들어서면서 갈등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중동에는 수니파의 인구가 훨씬 많고 대표격인 사우디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1979년 팔레비 왕조의 국왕독재를 무너뜨린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 이후 두 나라가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다.

시아파인 이란은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오랫동안 지원해왔는데 이들은 집권 세력의 일부로 참여 중이다. 사우디는 레바논 정부에 헤즈볼라와의 결별을 요구해왔다.

사우디·바레인 등 자국민에 레바논 철수령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 군을 파견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측 정부군을 지원했다. 반면 사우디는 시리아 반군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이라크에서도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이후 시아파 정부가 들어섰다. 대테러 작전이 끝난 후 이라크 쿠르드가 독립을 추진했으나, 이 역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시아파 민병대의 공격으로 무산됐다. 설상가상으로 사우디의 뒷방이나 마찬가지인 예멘에까지 이란은 시아파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손을 뻗쳤다.

이란의 약진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사우디의 새 실권자 빈살만은 친이란 성향을 보이던 카타르와의 단교를 주도해 고립 작전을 폈다. 이번 하리리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우디에서의 사임 발표도 그의 ‘작품’이라는 관측이 레바논과 이란 등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중동의 정세가 악화하자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도 해당 지역에서의 새로운 갈등은 “재앙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전쟁 위기의 불씨는 레바논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으로까지 옮겨붙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 측으로 싸운 시아파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하면서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이 벌어질 또 다른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쟁 불씨 아프간까지 옮겨붙을 가능성

키는 일단 빈살만이 쥐고 있다. 부패 척결을 이유로 왕자와 기업인, 고위관료 등을 대거 숙청한 그는 권력을 국왕과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군과 경찰, 국가방위군 등 모든 보안세력을 장악했다.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특권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국제사회에서의 독재자 이미지와 달리 국내에선 젊은 층과 주민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이렇게 국내적으로 입지를 다진 빈살만으로선 “사우디가 중동 내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며 대 이란 강경 노선을 밀어부칠 가능성이 있다.

또 그동안 빈살만의 조치에 힘을 실어주며 이란 견제에 동참해온 미국이 향후 중동 정책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도 변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빈살만의 대규모 숙청이나 하리리 총리 사임과 같은 중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 사우디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또 빈살만의 마이웨이가 시아파 국가들의 대규모 반발로 이어져 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을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앤드루 엑섬 전 미 국방부 중동정책 부차관보는 “이란이 예멘에 새로운 무기를 도입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기라도 하면 중요 무역 통로가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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