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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미얀마 난민 카렌족 보라네가 한국에 온 지 1년 되던 날..."꿈꿀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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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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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2일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카렌족 보라네 가족이 한국에 온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이날 저녁 카렌족의 예쁜 붉은색 전통옷을 입은 소녀 싸포싸에쏘(7)가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서울 명동의 한 극장 무대에 섰다. 이들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마련한 두번째 난민콘서트의 손님이다. 김보라는 싸포싸에쏘의 한국 이름이다. 아이가 온전히 ‘한국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가 딸의 한국 이름부터 지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 있는 멜라 캠프에 살던 보라네는 법무부의 난민재정착 지원을 받아 한국에 왔다. 미얀마 인구의 7%인 카렌족은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광산 채취나 댐 건설 등 강제 노동이나 성폭행의 고통을 겪어 왔다. 여기서 달아난 12만이 난민 캠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일상과 희망이 뿌리뽑힌 채 구호물품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2015년 22명, 2016년 34명, 2017년 30명이 재정착 지원을 받아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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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에 오던 날 공항 입국장을 나오자 “도착했을 때 기뻐서 눈물이 날 뻔했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플래시를 터뜨려서 평범한 사람인 내가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고 보라의 아빠 싸에크리스는 회상했다. 그는 “빌딩과 차,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무대 뒤 스크린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울 인사동 거리를 걸어가는 세 가족의 사진이 걸렸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난민 캠프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일상이다. 사진은 이들 가족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장준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찍었다.

장 작가는 난민촌에서 찍은 사진을 몇 장 더 보여줬다. 미얀마 정부군이 매설한 지뢰에 두 손을 잃은 남자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부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나왔을 때 싸에크리스는 자신의 팔에 남은 휴터를 보여줬다. 그가 2살 때 미얀마 정부군이 지른 불에 화상을 입은 상처다.

또 한 장 특별한 사진이 나왔다. 한 여성이 휴대폰을 들고 있고 휴대폰 영상에는 보라의 엄마 쏘무퍼가 웃고 있다.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맞은편에서 시어머니가 웃는다. 보라의 아빠 싸에크리스는 공장에 취직해 번 돈으로 가장 먼저 휴대폰을 사서 난민 캠프에 남아 있는 어머니에게 보냈다. 선물 배달은 장 작가가 맡았다. 보라는 “할머니가 꼭 커서 날 보러 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캠프에서는 쏘무퍼의 남동생이 매형의 남은 가족들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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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캠프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잘 곳이, 먹을 것이, 약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존엄이 필요한 듯 했다. 싸에크리스는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을 묻자 “안정적인 일과 수입이 있어서 행복하다. 거기서는 돈을 벌 수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빠와 남편으로서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없었던 현실이 가장 답답했던 것 같았다.

부부는 지난해 입국해 법무부의 난민지원센터에서 지내다가 얼마 전 집을 얻어 따로 살기 시작했다. 내년까지 법무부가 월세를 지원해주지만 그 이후에는 자립해야 한다. 교육열이 높은 쏘무퍼는 “아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어서 좋고, 한국의 교육 수준이 높아서 좋다”고 했다. 쏘무퍼는 딸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의사가 되서 다시 난민캠프로 돌아가 카렌 난민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나비드 후세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난민은 강제로 집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척박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의 사람들”이라며 “우리,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자리를 함께 한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는 4년째 친선대사를 해 오며 느낀 고민과 바람을 축사에 담담하게 담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준다. 경제는 무역의 이름으로 그러하고, 동맹국의 선거 결과는 동맹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멀리서 북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테러와 박해의 희생자가 난민이고 우리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의 고통과 박해의 쓰라림을 겪었기 때문에 난민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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