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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최상연의 시시각각] 항룡유회(亢龍有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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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소장 대행체제 강행이야말로

오만으로 실패한 과거정권 길이다

중앙일보

최상연 논설위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선 지금 야당은 지난 10년간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다시 말해 3선 이상이 돼야 야당생활을 경험했다는 건데 두 당을 합쳐 대략 스무 명 남짓이다. 100명이 훨씬 넘는 대부분의 의원은 아직도 야당을 연습 중이다. 구호 외칠 때 손 올리는 각도가 시원찮고 국감장의 호통도 아직은 여당스럽다. 그런 아마추어 야당에 긴장감을 만든 건 경찰이 대구은행을 털고 있다는 뉴스였다. 이제야 정권 바뀐 걸 실감한다는 야당이다.

청와대와 검찰은 ‘수사 대상을 정해놓은 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가 전 정권과 그 전 정권을 겨냥한다는 건 겁먹은 야당 표정만 보면 알 수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이 검찰 표적에 올랐고, 제2 롯데월드 인허가는 물론 10년 묵은 BBK 사건까지 수사 대상이란다. 여당 대표가 국회에서 MB를 직접 비난하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 정부 공격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적폐 청산이 사정(司正)은 아니다’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적다.

정치 보복이든 아니면 정치 보복성이든 잘못한 게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는 반부패 사정이 ‘적폐 지역’과 ‘적폐 세력’을 빠른 속도로 결집시키고, 등 돌리게 한다는 점이다. 집권 세력이 그걸 모를 리 없다. 무엇보다 폐족이던 친노를 부활시키고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이 이명박 정권의 압박 사정이었다. 그런데도 칼을 요란하게 빼든 건 일부러 자극하려는 게 분명하다. 자기 지지층만 보는 정치가 쉽고 익숙해서다.

김이수 헌재 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둘러싼 청와대의 혼선과 억지야말로 그런 대표적인 코드 정치다. 국회와 사법부를 설렁설렁 보니 ‘힘내세요 김이수’를 실검 1위로 만든 힘의 과시가 나오고, 근로시간 단축을 행정 해석으로 풀려는 편법이 등장한다.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과 이에 기반한 권력의 오만이 ‘다 덤벼’로 나타난 것이다. 말은 안보 협치 하자면서 발이 적폐 청산 연대를 향하니 약속했던 ‘대한민국 드림팀’은 꾸려질 까닭이 없다.

항룡유회(亢龍有悔·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라고 했다. 오만은 후회를 만든다는 뜻이다. 전전 정권을 향한 전 정권의 실패가 그랬고, 전전 정권의 정치가 같았다. 광우병 폭풍을 겪은 뒤 MB는 세일러 교수의 『넛지』를 청와대 참모들에게 돌렸다. 당시엔 정치 정상화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읽혔다. 하지만 그가 끝내 국회·야당·시민사회와 대화·협상에 나선 적은 없었다. 다음 정부는 그러다 레드카드를 받았다.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내세운 게 지금 정부다. 하지만 변화란 없다.

엊그제 오스트리아는 31세의 젊은 지도자를 선택했다. 이제 유럽에서 30~40대 지도자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번갈아 집권하며 기득권에 안주하는 기성 정치론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모였다. 30대의 젊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30년 묵은 노동개혁을 수술대에 올렸다. 그런데 우린 전임자와만 싸운다. 그것도 상대를 일부러 자극하며 몰아세운다. 심지어 북한마저 달래고 대화하자면서도 정치로만 돌아가면 코드고 당파고 패권이다.

편하게 해줘야 변화가 일어난다는 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넛지’의 메시지다. 문 대통령이 다짐한 것처럼 적폐 청산이 진짜로 누적된 관행을 바꾸자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적폐 청산이란 그저 법과 원칙을 따르면 된다. 조용하고 신속할수록 좋은 일이다.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까지 치는 건 넛지가 아니다. 그건 한풀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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