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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심시티 안의 젠트리피케이션...게임의 프레이밍을 되짚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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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54] ◆심시티, 도시 메커니즘의 납득 가능한 시뮬레이터

'심시티'는 아마도 도시를 다룬 게임 중에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게임일 것이다. 비록 최신작이 좁은 지도와 부족한 표현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시장에서 몰락했지만, 애초에 건설·운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창조적 재미가 가능함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심시티는 길지 않은 컴퓨터 게임의 역사 속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한다.

심시티의 여러 의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점은 역시 도시의 작동 메커니즘을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구조로 재현해 냈다는 점일 것이다. 시장 또는 도시 행정가의 관점에서 심시티 내의 도시는 RCI(Residence-주거구역, Commercial-상업구역, Industrial-산업구역)라는 세 가지 지구로 나뉜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주거구역을 확보해야 하고, 주거구역의 주민들이 일해서 먹고살아야 할 산업구역을 요구하며, 여기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상업구역을 필요로 한다. 심시티 구조의 근간을 이루는 RCI 세 요소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도시의 생동성을 만드는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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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경영시뮬레이션의 대표작 `심시티` 중 2편인 `심시티 2000`의 화면. 도시는 주거-상업-산업의 3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의 수요와 공급이 밀접하게 얽히며 만드는 상황들이 게임의 중심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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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심시티의 이러한 요소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은 실제 도시의 그것과 무척 흡사해 보인다. 일자리가 없으면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수입이 줄어들면 도시가 빈곤해진다. 도시의 번영을 위해서는 RCI 3요소가 고르게 성장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인프라 요소들-소방안전, 치안, 상하수도와 교육 등-의 발전이 동반돼야 한다. 무언가 하나라도 부족해지면 바로 성장세가 꺾이는 게임의 과정을 겪으며 플레이어들은 도시 성장의 요건들을 체감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게임 안에서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생각을 게임 밖의 도시와 연결 지어 보면 게임 안에서 매끄러운 연결구조로 잘 돌아가는 도시는 사실 현실의 도시 모두를 그려냈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로, 도시의 모습을 재현한 게임은 말 그대로 도시의 작동 메커니즘 중 가장 대표적인 요소들을 추려내 재구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도시를 모두 가상의 세계에 집어넣는 것은 설령 컴퓨팅 기술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그 기획 측면에 있어 아직까지는 불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우리가 문제 삼으려는 것은 그래서 심시티가 도시와 100% 똑같지 못하다는 점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100% 재현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심시티는 도시 메커니즘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성공한 게임이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도시의 수많은 현상과 요인들 중 무언가가 빠졌음에도 매끄럽게 잘 돌아가는 도시의 재현이 가능하다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하는 도시, 세금 향상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지대 상승'

심시티가 전제하는 방향은 도시의 성장이라는 지점을 향한다. 게임 내에서 도시는 성장해야 하며 좀 더 살기 좋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함이 전제된다. 그런데 그러한 도시를 구현하는 심오한 전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지대(地代), 즉 땅값이다.

살기 좋은 도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심시티는 땅값의 상승이라는 대전제를 고정시켜 놓았다. 더 많은 구역, 더 안전한 전기 생산과 깨끗한 물 공급, 치안과 안전을 위한 모든 작업에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도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방법에 돈이 들어가고, 시정(市政) 지출의 확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의 유일한 수입원인 세금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도시의 땅값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야 함이 심시티의 대전제다.

그래서 도시는 지속적인 땅값 상승의 과정 속에 성장한다. 초반에는 그저 소박한 전원도시에 가깝던 플레이어의 도시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세금 수입을 위한 지대 상승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치안과 안전이 확보되고 교통이 편리하며 깨끗한 환경을 만들수록 해당 지역의 땅값은 올라간다. 허름한 집들은 땅값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더 세련되고 비싸 보이는 집으로 업그레이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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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티 2013`의 땅값 지도. 붉은 색이 낮은 땅값의 지역을 가리킨다. `심시티`는 땅값을 바탕으로 한 세금 확대로 도시성장을 이뤄나가는 기본 프레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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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화면을 좀 확대해서 그 땅값 상승의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섬뜩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지대 상승과 함께 바로 해당 지역의 허름한 주택들이 사라지고 세련된 맨션이 올라가는 과정은 도시 개발에 있어 꽤나 많은 이슈를 일으키는 지점, 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다루지 않는다. 허름하고 낡은 집은 아무런 소리 소문 없이 쓱 철거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결국 현실 도시의 모든 면을 100%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은 그중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추출된 요소만으로도 움직이는 도시의 구조를 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요소들을 선택하게 된다. 심시티는 그 동작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프레이밍을 수행하는데, 그 전제로 나타나는 것이 성장 위주의 도시이며, 성장의 동력으로 자금력을 붙이고, 행정 자금의 근원인 세수를 만드는 땅값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지대 상승과 이를 통한 성장의 프레임으로 짜인 심시티에서 철거 문제나 빈민 문제, 젠트리피케이션 이슈는 게임 안에 자리 잡을 여지가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어차피 현실의 재현이 아니므로 무의미하다. 그런 가치 판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 현실을 모사함에 있어 차용하는 요소들이 매끄럽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상을 보는 일관된 프레이밍을 가져야 하고, 게임 안의 요소들은 그 프레임 안에서 배치된다는 점이다.

◆대안 게임, 게임 비평, 게임 메시징을 위한 세계의 재해석

똑같이 도시 운영 시뮬레이터를 만들더라도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게임의 성격을 다르게 가져가는 요소가 될 것이다. 심시티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게임이라기보다는 '잘 돌아가는 도시'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성장 개념을 기본 프레임으로 상정한 사례일 것이고, 그렇기에 보편적인 납득의 가능성을 얻었다.

그렇다면 만약 게임의 매체성을 활용해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고 세계의 이면을 비추려는 노력을 하기 위한 힌트 또한 여기서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도시의 예를 들자면,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품는 도시 운영 게임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 위주의 프레임으로 짜여 돌아가는 도시 운영 게임 안에 돌출하는 철거민 이슈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보편적인 도시구조의 해석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면서 메시지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심시티가 그런 이슈 없이도 도시의 구조를 훌륭하게 그려냈다는 점과는 다른 입장을 파고드는 방식은 결국 게임 구조의 기초를 만드는 프레임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내러티브가 아닌, 존재하는 세계의 구조와 작동논리를 재현하는 게임에서 보다 대안적이고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는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은 게임들이 세계를 재구현할 때 사용한 프레임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 프레임에 전제된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돌이켜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더 이상 서브컬처라고만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게임 매체는 곧 좀 더 다채로운 메시징 도구로서 활용될 시대를 맞을 것이고,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게이머와 제작자, 비평가들에게는 게임의 프레임을 생각하는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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