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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Cover Story] 해외서도 인정받은 `혈당기 신화`…4차산업혁명 의료기기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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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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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당뇨 환자들이 '아이센스'가 어떤 회사냐고 묻더군요. 잘 쓰던 글로벌 회사의 혈당기를 처음 듣는 한국 회사 제품으로 바꾸라니 불만이 많았습니다. 항의 시위까지 할 정도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의사도 환자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남학현 아이센스 사장은 회사를 성장시킨 중요한 계기로 2012년 뉴질랜드 정부 입찰 성공을 꼽았다. 뉴질랜드는 정부가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격인 'PHARMAC'이라는 기관을 통해 당뇨 환자들의 혈당기와 소모품 등 비용 일체를 지원한다. 아이센스는 입찰 경쟁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제치고 최종 선정됐다. 지금은 뉴질랜드 당뇨 환자 약 97%가 아이센스 혈당기 '케어센스'와 스트립(혈액을 떨어뜨려 혈당을 체크하는 시험지) 등 소모품을 사용한다.

남 사장은 "3년 후 뉴질랜드 정부 차원에서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기존 제품과 동일한 효과를 내면서도 150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우리도 글로벌 기업과 품질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 한 나라를 통째로 커버할 수 있는 노하우와 생산 능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뉴질랜드 정부의 다양한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한 경험은 큰 자산이 됐다. 혈당 이력 등 데이터를 관리하고 제품 사용법과 관리법을 교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스마트 로그'를 개발했고, 병원 전체가 간편하게 공유하면서 의료진이 자유롭게 환자 상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 국민이 같은 기기를 사용하면서 동일한 소프트웨어(SW)로 분석하니 당뇨 환자 관리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도 경험으로 배웠다.

아이센스는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하며 매출의 85% 이상을 국외에서 올리고 있다. 올해 이 회사가 출고한 혈당기는 160만대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 브랜드인 케어센스와 케어센스N 등 각각 다른 기능을 탑재한 총 38종의 제품을 생산할 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로 제조·공급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브랜드도 41종이나 된다. 혈당을 측정하는 기능은 똑같은데 제품군이 다양한 이유는 환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혈당을 읽어주는 음성 기능이 있는 제품은 시각장애인 당뇨환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기가 됐다.

남 사장은 "기술적인 부분은 몇 단계 앞서 있다고 보면 된다. 스트립을 끼우고 혈당을 기록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일체형으로 다 되는 최고급 사양 제품도 개발을 마쳤다"면서 "17년째 이 비즈니스를 해왔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 어떤 제품을 언제쯤 시장에 내놓을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환자도 많고, 많은 부분을 정부가 지원하는 상황이더라도 기술력만 발휘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여러 회사가 경쟁하면서 기기는 공짜로 주고 스트립을 판매하는 시장이 만들어졌죠. 공짜로 주다 보니까 자연히 저가형 기기가 많이 나오고요. 저는 연구원들에게 꾸준히 럭셔리 제품을 만들라고 주문합니다. 앙드레김 패션쇼를 보세요. 쇼에 등장한 옷을 사 입지는 않지만 그 감각을 믿고 매장을 찾게 되지 않습니까? 장기적으로는 저가형과 고급형 제품이 고르게 나와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줘야 합니다."

향후 2~3년은 아이센스에 또 한번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국제표준화기구(ISO)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혈당기 관련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술력 있는 회사들만 살아남는 시장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주문을 수용하기 위해 연간 14억개 스트립 생산 체제도 구축했다. 사드로 조금 지연되기는 했지만 중국 장쑤성에 만든 공장도 내년 초에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정부 과제로 개발 중인 연속혈당측정기는 늦어도 내후년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용 혈당기 회사에서 의료진 신뢰를 받는 차세대 의료기기 회사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다. 남 사장은 "혈당기를 넘어 다른 의료기기 사업도 차근차근 준비 중"이라며 "면역분석기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지난해 인수한 미국 회사가 만든 혈액응고 진단기기 론칭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꼽히는 기술을 적극 접목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많은 고민을 해결해 주더군요. 개발 과정에 AI를 적용해보니 기기의 정확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유심칩 하나만 끼우면 클라우드 시스템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요. 핀란드에서 3년간 파일럿 스터디를 한 결과 혈액을 떨어뜨리고 스트립을 빼는 순간 혈당이 자동적으로 클라우드로 기록되는 시스템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고령층의 홈케어와 어린 환자들의 관리에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남 사장은 2000년 광운대 화학과 교수 재직 중에 차근식 교수와 함께 아이센스를 창업했다. 연구 과제를 이어가기 위해 제자들과 시작한 회사는 16년 만인 지난해 매출액으로 1324억원(연결 기준)을 올리는 대표적인 의료기기 기업이 됐다. 연구자 출신 경영자로 성공한 비결을 묻자 남 사장은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을 찾은 것'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꼽았다.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시장에 가장 잘 팔 수 있는 것을 찾았고, 사장으로서 '직원들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제품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남 사장은 "창업 초기에는 사람은 부족하고 하고 싶은 일은 많기 마련"이라며 "한 사람에게 많은 일을 맡기고 성과를 내라고 독촉하고 싶을 때, 심리학 책을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말씀드립니다.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칠복삼이라고도 해요. 운은 그때그때 일이 잘 풀리는 것이고, 복은 열심히 노력해야 유지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매년 15~20% 성장을 해왔고 향후 5년은 이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후는 또 운칠복삼에 맡겨야겠죠."

[신찬옥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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