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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제약바이오 다리놓기] 가시밭길 같은 신약개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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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월이 지난 후 제약바이오업계가 2017년도를 정의한다면 위대한 CAR-T의 시장 진입과 거대한 가설의 소멸이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는 좋은 콜레스테롤을 늘려준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CETP(Cholesteryl ester transfer protein)라는 단백질의 저해제'인 머크사의 아나세트래피드(anacetrapid)가 임상 3상 완료 후 개발이 중단됐다.

이로써 1990년대 이래 고지혈증을 포함한 심순환계 질환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던 CETP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비를 내리지 않고 지나가 버린' 먹구름이 되고 말았다.

신약 개발은 참으로 길고도 어려운 과정이다. 개별 기업들이 감당하기에 참으로 벅찬 사업모델이다. 이러한 독특한 어려움 때문에 임상 단계의 기술 이전이라는 '중간단계 거래'가 다른 산업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 즉, 작은 규모의 회사들이 전임상과 임상 초기를 마친 후에 적절한 가격에 더 큰 회사들에 추가적인 개발을 부탁하면서 실시권을 이전하는 것이다.

사실 초기 임상까지의 길도 참으로 험난하고 예측이 어려운 과정이다. 전임상 단계에서는 '신약허가를 받을 확률'이 10% 정도다. 첫 환자의 약효 검증에만 수백억 원이 든다. 더군다나 혁신신약을 연구하는 초기에는 모든 정보가 제한적이다. 누구나 데이터와 정보를 충분히 확보한 후에 의사결정을 하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희망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는 신하들의 말에 인조는 "아껴 먹되 너무 아껴 먹지는 말라"는 당부를 한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현실성 없는 말이라는 비난의 평이 대부분이지만, 국내처럼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의 입안에서 늘 맴도는 말이 아닐까? 또한 보름달이 뜬 날, 저 멀리서 지원병들의 봉화가 타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마음은 모든 혁신신약하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과도 같다. 시간이 지나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제 2017년을 기점으로 CETP는 업계에서는 차츰 잊힐 이름이 될 것 같다. 마치 한국에서 팩티브라는 이름이 희망의 상징에서 실패 사례의 전형처럼 돼버렸듯이.

하지만 이 시점에서 '실패자 예찬가'를 부르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길을 가는 과정에 그 탐험가들이 겪고 감당해 냈던 숱한 역경 속에서 동료들과 불렀을 희망의 노래를 생각한다면, 실패였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거나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위대한 도전정신'이 있다.

최근 국내 과학계에서는 국방과학연구소 이야기가 화두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실패한 연구개발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연구원들에게 내린 정부의 결정에 대한 우려와 당혹스러움 때문이다. 위대한 실패들. 위대한 실패들 없이는 절대, 절대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위대한 실패들'은 사실 실패가 아니고 성공으로 갈 길을 밝히는 '성공적인 탐색'들이다.

이제 우리는 위대한 실패자들의 위대한 도전정신을 칭송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도전의 싹이 튼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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