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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일러스트와 만난 명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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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학고재) 판매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300만명을 돌파한 영화의 인기도 한몫했지만, 책에 삽화를 더해 재출간을 한 영향도 크다. 100쇄를 기념해 제작된 '일러스트판'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한 손꼽히는 동양화가 문봉선의 그림 27점이 수록됐다.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두 나라 간의 전쟁, 민초의 고통을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동양화로 옮겨 책에 스산한 느낌을 더한다.

청소년·아동 소설의 동반자였던 삽화(揷畵)가 성인용 소설과도 만나고 있다. 최근 검증된 명작 소설이나, 고전의 일러스트 에디션을 재출간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글을 보완하는 조연 자리를 넘어 주연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소설 '파이 이야기'는 일러스트 버전을 재출간했다. 전 세계 1000만부를 돌파한 이 소설은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대표작으로 2002년 맨부커상을 받은 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5년 원작을 출간한 캐나다의 출판사는 이 소설을 대상으로 일러스트 국제 공모전을 열었다. 이때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수상한 사람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화가 미슬라프 토르야나크다. 그가 얀 마텔과 함께 작업한 삽화 40점을 수록한 버전이 국내에도 나왔다. 한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표류기가 강렬한 원색의 회화를 만나 소설에 읽는 맛을 더한다. 김종숙 작가정신 편집장은 "30만부가 꾸준히 나간 스테디셀러였는데, 재출간 이후 판매가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일정 분량 이상의 두꺼운 장편소설은 제작비 부담으로 인해 일러스트가 더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남한산성'과 '파이 이야기' 모두 400쪽이 넘지만 이미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작품성도 검증된 소설이라 가능했다. 일러스트판의 재출간은 잊힌 구간의 경우 다시 한 번 시장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00년 이후 국내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인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문학동네)도 세계적 삽화가인 뫼비우스의 일러스트를 수록한 개정판이 2014년 출간된 뒤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문학동네는 검증된 고전을 선별해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이라는 시리즈도 꾸준히 내고 있다. 2005년 카프카의 '변신'을 낸 이후 괴테의 '파우스트',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등 12년간 10종을 펴냈다. 청소년용 축약본이 아니라, 전작을 싣고 삽화를 덧붙이는데 이는 일러스트북을 찾는 성인 독자들이 늘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해외 유명 화가와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삽화가가 원작의 명성보다 판매에 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1만부를 넘긴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와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이 나란히 가장 많이 나갔다. 두 작품 다 스페인 삽화가 하비에르 사발라 덕분이다. 이현정 문학동네 해외문학팀 부장은 "'필경사 바틀비'를 자신만의 강렬한 필치로 해석한 삽화가 인기를 끌면서 이후 여러 권의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개성 넘치는 삽화는 독자들이 책을 발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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