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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리뷰] 김광보·장우재의 공력···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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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연극 '옥상밭 고추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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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옥상밭 고추는 왜'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서울 변두리의 낡은 빌라는 대한민국 압축판이다. 13일 개막한 세종문화회관(사장 이승엽) 산하 서울시극단의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이 빌라에 사는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사회 민낯을 톺아보는 수작이다.

11년 만에 재회한 연극계 스타 연출·극작가인 김광보(53)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장우재(46) 극단 이와삼 대표의 장기와 공력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렸다. 자본주의의 차가운 얼굴,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20년 이상이 된 빌라의 옥상에 304호 늙은 '광자'가 고추를 심었다. 201호 아줌마 '현자'는 그 고추를 몽땅 따갔다.

301호 사는 배우 지망생 현태의 눈에는 가만히 지켜볼 일이 아니다. 이 사건(?)에는 빌라 신축을 두고 똬리를 튼 앙심이 있다. 결국 현자 때문에 광자가 쓰러진다.

현태와 303호에 사는 동교는 현자의 사과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동교는 곧 교수를 앞둔 시간강사이자 자신과 이혼을 앞둔 아내와 사는 고학력 실업자다.

현자는 '그깟 고추가 뭔데?'라며 이렇게까지 하냐고 두 사람을 힐난한다. 하지만 현태는 고추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울부짖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한 반항심이다.

'옥상 밭 고추는 왜'가 탁월한 점은 균형 감각이다. 인물들은 화를 내고 분노하고 좌절하는데 극의 에너지는 심하게 요동치지 않는다.

유산균 음료를 배달하는 현태의 모친은 아들에게 '왜 자신의 화를 남에게 돌리냐'며 주저 않는다. 현태와 동교를 돕는 강남 좌파들은 어영부영하고, 현태는 심지어 인터넷에 현자의 신상명세를 올리는 등 최소한의 선마저 넘는다. 상고를 나와 억척같이 돈을 모은 현자는 일부에서 꼴보수처럼 보일 수 있음에도, 공감할 여지가 있다.

장우재 작가의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따끔한 대사들, 그 말들의 날을 또 아무렇지 않게 벼리는 김광보 감독의 절제된 연출이 만나 빛을 발했다.

장 작가의 이전작들에서 페르소나를 맡아온 캐릭터 이름인 동교의 극 중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현자의 반려견을 납치한 뒤 무단으로 풀어준 뒤 스스로 경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가 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침잠하지도 않는다. 1994년 '지상으로부터 20미터'로 대학로에 나란히 연출가와 작가로 데뷔한 이후 연극계와 사회에 비수를 던졌던 김광보 감독과 장우재 작가는 이제 연극계를 대표하는 중진으로서 그럼에도, 희망을 보려는 의지를 내비춘다.

능청으로 극의 분위기를 녹이는데 한 몫하는 동시에 광자의 장례를 묵묵히 돕는 101호 성복처럼 보이지 않는 연대가 티 나지 않게 녹아 있다.

평범하지만 청년 문제의 부조리로 똘똘 뭉친 현태를 자연스럽게 소화한 이창훈, 악역처럼 보이는 캐릭터에도 설득력을 부여한 현자 역의 고수희 등 배우들도 호연했다. 오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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