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케냐 북동부 다다브의 한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는 소말리아 출신 난민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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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난민촌을 폐쇄하고 난민들을 강제 이주하는 행위는 위헌이자 국제법에 위배된다.”
최근 대선 무효 판결로 주목 받은 케냐 사법부는 지난 2월 9일(현지시간) 또다른 한 판결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케냐 고등법원의 존 마티보 판사는 앞서 지난해 5월 정부가 ‘안보 상의 이유’로 북동부 다다브 난민 캠프 폐쇄를 결정한 것이 재량권 남용일뿐 아니라 “난민 박해와 마찬가지인 조치”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에 인권단체 등 국제사회는 “인도주의 위기에 처한 난민들을 위한 결정이 내려진 역사적인 날”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 판결이 유독 주목을 받았던 배경은 다다브 난민 캠프의 특별한 역사 때문이다. 다다브 캠프는 오랜 기간 세계 최대 난민 캠프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 케냐에는 남수단, 르완다 등 이웃국가로부터 피신한 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다다브 캠프에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로 불리는 소말리아 출신 난민 25만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이 시작된 직후 조성돼 쏟아지는 난민들을 수용하기 시작, 현재 25년 넘게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전, 보건, 교육 등 국가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상실한 ‘무늬만’ 국가인 소말리아를 대체한 삶의 터전인 것이다.
25만여명의 소말리아 난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케냐 북동부 다다브 난민 캠프의 모습.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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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브에 머무르고 있는 소말리아 난민들의 처지는 다른 분쟁국가의 난민들보다도 한층 더 절박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지난해 7월 다다브 캠프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캠프 내 난민들을 대상으로 펼친 설문조사에서 절대 다수의 이들이 “고향으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통상 아무리 위험 상황이어도 내전이 잦아들면 귀향하고자 하는 여타 난민들과도 전혀 다른 반응이다. 캠프에서 직접 만난 소말리아 난민 838명 중 86%가 고향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답했고, 소말리아에 의료ㆍ보건 서비스가 전무하다고 밝힌 이들의 수도 비슷했다. 사실상 모두라고 할 수 있는 97%가 ‘소말리아 내 성폭력 위험이 매우 높다’고 했으며, 그만큼 다다브 캠프가 ‘아주 안전하다’고 답한 비율도 96%에 달했다.
이러한 소말리아 출신 난민들이 캠프 폐쇄 결정으로 인해 공포와 걱정에 휩싸인 것은 당연했다. 전체 소말리아 난민 110만여명 중 대부분인 90만여명이 자국 내 평화 지역을 찾지 못해 케냐 등 이웃 국가로 떠난 상태다. 난민들은 제대로 된 정부와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고향으로 송환되고 싶지 않다고 거듭 밝혔다. 한 난민은 “케냐 정부는 (캠프를 폐쇄할 바엔) 차라리 나와 가족을 죽이는 게 나을 것”이라며 “소말리아로 돌아가는 것은 아예 고려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등법원 판결 이후 약 7개월이 지난 현재 다다브의 난민들은 안심하고 있을까. 여러 외신 보도에 따르면 그래 보이지 않는다. AFP통신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18개월간 5만명 이상의 소말리아 난민이 다다브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당국의 보조금 지원 등을 약속 받고 귀국했지만 물가가 폭등한 상태에서 생활고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교육도 힘겨운 것으로 알려졌다. 내전이 끝난 것도 아니다. 수도 모가디슈 인근이자 극단주의 무장조직 알샤바브의 거점이었던 바리르 등 남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알샤바브와 임시 연방정부군, 아프리카평화유지군(AMISOM) 등 여러 세력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2012년 소말리아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가 재건을 향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새 의회가 설립됐고, 올해 2월에는 모하메드 압둘라히 압둘라히 대통령도 공식 취임했다. 이에 2013년 8월 22년간의 활동을 접고 소말리아에서 철수했던 국경없는의사회도 지난 6월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 끝에 마침내 중부 갈카요에서 영양실조 및 소아 환자 치료 등 의료 활동을 재개했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소말리아를 ‘실패한 국가’ 대신 ‘취약 국가(Fragile State)’로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민들이 안심하고 고국에 돌아갈 수 있는 ‘정상 국가’가 되기까지 갈 길은 멀다. 그때까지 소말리아인들에 대한 모든 분쟁 당사자의 지원이 절실하다.
티에리 코펜스 한국 국경없는의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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