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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Scene # City]고문-인권탄압 ‘부끄러운 역사’ 기억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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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사람’ 속 안기부 건물

동아일보

1995년 서울 중구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본관 모습(사진 정면 건물). 동아일보DB


1988 서울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봄. 영화 ‘보통사람’(2017년)은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거부한 4·13 호헌 조치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민주화 열망이 거세지자 군부정권은 국민의 관심과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무엇’을 찾는다. 성진(손현주)은 강력계 형사로 살인범을 쫓느라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장애로 다리를 저는 아들, 아내(라미란)와 깨끗한 양옥에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진 평범한 가장이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의 공작에 말려들어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영화에 잔인한 고문 장면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두려운 눈빛의 피해자 뒤편 창문 너머로 선명한 남산서울타워를 보여준다. 낮부터 밤의 아름다운 조명으로 바뀌기까지 긴 시간 고통받았을 피해자의 절망에 공감한다. 안기부가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던 자유일보 베테랑 추 기자(김상호)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자 안기부 실장은 같은 법대 선배인 추 기자 귀에 속삭인다. “그럼 계속 고생하세요, 선배님.”

영화의 배경인 안기부(옛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건물군(群)은 중구 예장동 남산 1호 터널 근처에 있다.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1972년 남산 본관을 세웠다. 1981년 안기부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남산에 있었다. 1995년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건물들의 소유권은 서울시로 넘어갔다.

대부분 건물은 서울시가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 안기부 본관은 2006년 새 단장을 마치고 서울유스호스텔로 개관했다. 사무동으로 쓰던 건물은 각각 서울소방방재본부와 대한적십자사로, 6별관은 서울종합방재센터로 사용한다.

수사국이던 제5별관은 서울시청 남산별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서울시특별사법경찰이 불법 대부업이나 방문판매업 피해를 본 시민의 신고를 접수해 민원을 해결한다. 다른 건물들과 떨어져 있어서인지 입주 초기에는 “이상한 걸 본 것 같다” “혼자 화장실에 갔는데 오싹한 기분이 든다”며 불안감을 호소하는 서울시 직원들이 있었다고 한다.

동아일보

서울시 ‘남산 제 모습 찾기 운동’으로 본관은 2006년 청소년을 위한 서울유스호스텔로 리모델링했다. 옛 안기부장 공관은 2001년 시민과 문인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단장해 개방하고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중정부장과 안기부장이 사용한 공관은 2001년 ‘문학의 집 서울’로 탈바꿈했다.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게 하던 높은 담을 허물어 누구나 정원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시 낭송, 문학 행사, 기획전시를 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

국내 정치사찰을 하던 6국 자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기억6’으로 명명하고 빨간 대형 우체통 모양 전시실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8월 지하를 제외한 지상 건물은 모두 철거했다. 내년 8월 완공되는 전시실 지하에는 과거 인민혁명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당시 수사와 고문이 이뤄진 취조실이 재현된다.

남산별관에서 남산창작센터를 잇는 둘레길을 걷다 보면 길이 84m 터널인 ‘소릿길’이 나온다. 2015년 만든 이 길은 기존 터널 바닥에 전국에서 모아온 돌들을 깔았다. 터널 안을 걷노라면 철문 열리는 소리, 타자기 치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2017년 지금 이 길을 걷는 평범한 사람들도 왠지 모르게 긴장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검정 세단을 타고 남산 숲길을 오르내리는 장면이 관객을 긴장시키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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