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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6·25 해상유격전 벌인 경찰 전사자 '호국영웅 귀환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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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초기 전남 완도 일대에서 북한군과 싸우다가 숨진 경찰관 유해가 67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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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22일 “6·25 전사자 구창신 경사의 손자 구봉호(61)씨 인천 자택을 오늘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함께 발굴된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3월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서 구 경사의 유해를 발굴했다. 유해에서 채취한 유전자 시료는 구 경사의 딸 구정자(81)씨와 일치했다.

1910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구 경사는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고 살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마흔의 나이로 전투에 참가했다.

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은 한달 만에 남해안까지 진출했고 구 경사는 7월 27일 완도로 철수한 지역 경찰에 속해 해상유격전을 벌였다.

□구 경사는 강진경찰서 소속으로 1950년 7월 27일에 전남 서남부지역 경찰과 함께 완도로 철수하여 해상유격전을 전개했다. 당시 강진경찰서 부대원 150여명은 마량포(지금의 전남 강진군 마량리)에 진출한 북한군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1950년 8월 5일 고금도에 상륙했다.

경찰의 도서작전으로 북한군 1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기록했다. 북한군의 완도 상륙 계획을 파악한 경찰은 총본부를 청산도에서 완도로 이동하고, 무안 경찰서 부대원 80명을 여수관내 남면도에서 철수시켜 완도에 증원배치하게 된다.

강진경찰서 부대원들도 고금도에 배치돼 북한군의 완도 상륙을 저지 하였는데, 구 경사는 이때 북한군의 총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 경사의 유해는 2017년 3월 14일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서 버클 등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구 경사의 유해를 찾는 데는 지역 주민과 유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손자 구봉호씨는 할아버지가 고금도에 매장됐다는 마을 주민의 말을 듣고 고금도를 수차례 방문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구씨는 이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제보했고 유해발굴감식단은 6·25 전쟁 당시 경찰 전투 기록 등을 토대로 지난 3월 발굴작업에 나서 구 경사의 유해를 수습했다.

앞서 구 경사의 딸 정자씨가 아버지 유해를 찾고자 2012년 9월 지역 보건소에 찾아가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 이어 유족과 협의를 거쳐 구 경사의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입원 치료 중이라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딸 정자씨는 “6·25 전쟁 때 고금도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기억이 난다”며 “아버지를 찾게 돼 너무 감격스럽다. 아버지를 찾아준 국방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23번째, 경찰 전사자로는 22번째이다. 올해는 지난 19일 경남 합천에서 진행된 고 한진홍 일병에 이어 다섯 번째로 갖는 행사이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123명의 호국용사의 경우 유품(인식표, 도장, 명찰, 사진 등)과 유가족의 유전자 검사를 통한 친족관계 확인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3만 9000여 명으로 6·25전쟁 이후 미 수습된 유해 13만 3000여 위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참전용사 증언 청취를 통해 6·25전쟁 당시 전사자를 직접 매장했거나 목격 또는 들은 내용을 확인해서 유해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박성진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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