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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식품박물관]74년생 ‘뚱바’의 기적, 빙그레 웃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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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소비 늘려라" 박정희 주문에

고급과일로 통하던 바나나 맛 넣은 우유 개발

'우유는 비닐팩' 편견 깨고 도자기 모양 차용

40년 넘게 인기우유로 장수...해외로 수출까지

[이데일리 박성의 기자] 1964년 12월 박정희(1917~1979)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장으로서 처음으로 서독을 방문했다. 1960년대 초반 한국은 6.25전쟁 이후 초토화된 국토에 보릿고개를 겪던 가난한 나라였다. 반면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며 유럽의 맹주로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다.

한·독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서독을 찾은 박 대통령은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던 서독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 영감을 받는다. 그 중 하나가 식생활이었다.

특히 독일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우유를 마시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유는 한국에서 마시기 어려운 귀한 음료였기 때문이다. 마침 서독은 캐나다산 젖소 200마리를 한국에 공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서독에서 젖소를 들여온 이후 여러 난관 끝에 한국도 우유생산국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흡사 막걸리를 닮은 희멀건 우유는 국민들에게 낯설었다.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우유를 많이 마실수록 국민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 박 대통령은 ‘우유 소비 장려 정책’을 주문한다. 사업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을 사시로 했던 한화그룹 창업주 고 김종희(1922~1981)회장도 국민들의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김 회장은 1973년 부도 위기에 몰린 낙농업체 대일유업(현 빙그레)을 인수하고 유제품 생산에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도 박 대통령의 ‘우유 소비 장려 정책’에 공감하고 빙그레 개발팀에 직접 우유 신제품 개발 목표를 제시한다. ‘아이도 어른도 좋아할 만한 맛과 생김새를 지닌 새로운 우유를 만들자.’

◇물음표 얹은 도전, 우유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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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할만한 우유’를 만들라는 대통령과 총수의 주문을 받아 든 빙그레 신제품 연구팀. 연구팀은 밤낮으로 우유와 궁합이 맞는 과일을 찾았다. 그렇게 최종 후보군에 오른 게 바나나다. 당시는 수입 과일이 비쌀 때다. 바나나는 특별한 날에나 먹는 고급 과일이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바나나 향을 우유에 넣고 시음한 첫 날, 연구팀은 ‘이거면 됐다!’고 환호했다. 우유 특유의 밍밍함에 달콤한 바나나 향이 조화를 이뤘다. 남녀노소 부담없이 즐기기 좋았다.

다만 용기가 문제였다. 기존에 사용되던 비닐 팩이나 유리병과는 차별화한 특별한 용기가 필요했다. 박영준 빙그레 대표이사는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바나나맛 우유였기에 제품 구상단계부터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용기의 외형을 고집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전국을 돌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찾은 도자기 박람회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달 항아리’를 보게 됐다. ‘달 항아리’는 일명 ‘백자대호’라 불리는 조선시대 후반 백자로 완만하면서도 풍만한 곡선에 특유의 단아함이 매력적인 조선백자다. 연구팀은 한국 도자기의 미학적 정수가 담긴 달 항아리의 곡선을 우유 용기에 차용해보기로 한다.

다만 모양이 신기해서만은 ‘롱 런’ 할 수 없다는 게 연구팀 판단이었다. 실용성에도 공을 들였다. 마실 때 용기가 기울더라도 내용물이 흐르지 않도록 입구 부분에 턱을 만들었다. 용기는 바나나의 노란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반투명으로 제작했다. 내용물 담기에 급급했던 당시 업계 분위기에 기능과 모양, 색상 그리고 한국적 정서까지 고려한 포장 전략은 혁신을 넘는 실험이었다.

1974년,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이렇게 탄생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전례없는 도전이었기에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당시 업계의 기대도 반신반의. 각진 우유가 판치던 시대, 빙그레가 내놓은 신상품은 마치 ‘UFO(미확인비행물체)’처럼 낯설었다. 노란 빛깔의 우유를 담은 뚱뚱한 우유 앞에 수많은 물음표가 찍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바나나 향을 통해 천편일률적이었던 ‘흰우유’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원하는 맛을 찾아냈다. 고향 뒷동산의 부드러운 곡선을 닮은 ‘달 항아리’ 모양의 디자인에 남녀노소 모두 호감을 보였다. 맛과 용기의 혁신을 동시에 이룬 것이다. 이후 44년이 흐르면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국내 유업계를 대표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빙그레는 지난해 바나나맛 우유 용기를 특허로 등록했다.

◇ 해외로 뻗는 ‘뚱바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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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십 수개의 바나나맛 우유가 유통되고 있지만, 대중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나나맛 우유는 일명 ‘뚱바’(뚱뚱한 바나나맛 우유)다. 항아리를 닮아 단지 우유라는 별칭까지 붙은 바나나맛 우유는, 하루 평균 80만개 이상, 연평균 2억5000개 이상 판매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1명이 1년에 ‘뚱바’ 5개를 구매하는 셈이다. 현재 국내 가공유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다.

‘뚱바’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1998년 300억원, 2001년 6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데에 이어 2007년 가공유 제품으로는 사상 최초로 연매출 1000억원대 기록을 달성했다. 2012년 매출 1600억원 고지를 밟은 후 2013년 173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5년까지 17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유지했다. 작년에는 1950억원으로 역대 최대 연매출을 기록하면서 회사 전체 실적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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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바나나맛 우유의 인기가 유지되고 있는 배경에는 김호연(63) 빙그레 회장의 남다른 공격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고 김종희 회장의 차남이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김 회장은 ‘토종 브랜드’인 바나나맛 우유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지녔다. 김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제품의 품질이다. 세계무대에서 통하려면 ‘박리다매’ 전략이 아닌 고품질을 앞세운 ‘프리미엄 우유’라는 인식을 굳혀야 한다는 게 김 회장 생각이다. 이에 빙그레는 2015년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해 바나나맛 우유의 유통기한을 15일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바나나맛 우유는 2004년부터 미국에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10여 개 국가에 진출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한류 우유’로 불리며 인기가 뜨겁다. 2010년 약 7억원이던 매출은 2016년 약 150억원까지 증가했다. 빙그레는 2014년 상하이에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중국 유통망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박영준 대표이사는 “바나나맛 우유는 고객들의 큰 사랑 덕에 국내 가공유 시장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며 “이제는 바나나맛 우유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제품이 되도록 계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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