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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한지훈의 스테레오마인드]추억의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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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겉보기엔 맨손으로 소도 때려잡을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흡연과 폭음하는 음주 습관, 게다가 운동을 싫어해서 몸에 성한 곳이 없다. 건강보험 산정특례를 지정받을 정도이니 자다가 갑자기 요단강을 건너가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는데, 문제는 몸이 이러면 관리라도 잘 해야 하는데 안 좋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결국 주치의에게 3개월 후의 상태를 보고 약물 치료를 이어갈지 수술을 할지를 결정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기에 이르렀다. 주치의의 요구사항은 감량과 운동.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던데, 평소에 어머니께 전화도 잘 안 드리는 내가 효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걱정을 하실 것이고, 몸에 칼자국을 내는 것도 싫어서 자전거를 다시 정비하고, 동네 휘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데…

모 아니면 도의 중간을 모르는 성격이라 너무 심하게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불면증 덕분에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에는 두 시간동안 스트레칭, 밤에는 만 보 걷기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40여 일을 했더니 “왜? 태릉선수촌에라도 들어가게?” 라는 농담과 함께 주위의 걱정을 사기 시작했다. 원숭이라도 되려는 건지 이때부터 주식은 바나나와 사과와 우유, 그리고 견과류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난생 처음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고, 그런 상태가 며칠 이어지다보니 “당이 떨어져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마트에 가서 사탕을 사게 되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사탕을 사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에는 무슨 사탕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사탕코너에 가보니 와… 마치 시간을 수십 년 전으로 옮긴 것처럼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있던 사탕들이 겉봉투만 바뀐 채 그대로 판매되고 있었다. 땅콩이 들어가 있는 녹여 먹다가 참지 못하고 깨물어 먹다가는 입천장 베기 십상인 사탕부터 버터맛, 커피맛, 바나나맛이 들어있는 사탕, 녹색에 청포도 맛이 나는 사탕, 그리고 ‘사랑방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깡통에 들어있던, 갖가지 과일맛이 나는 사탕의 원조 격인 사탕까지 어느새 마트의 사탕 코너는 7~80년대의 구멍가게로 변해있었다.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꼬맹이 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주섬주섬 사탕을 집기 시작했다. 추억의 맛을 생각하면서. 마치 아이처럼 설레는 기분으로 사탕 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이거 예전의 그 맛이 아니면 어떡하지?”

어릴 때 먹던 청포도 맛이 나는 사탕이 이제 다른 맛이 난다면 이건 백합처럼 시들어가는 아사코를 세 번째 본 피천득 선생의 기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차라리 사탕을 뜯지 말고 그냥 눈으로만 볼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다 현기증이 너무 심해 녹색 사탕 봉지를 먼저 뜯었다. 속 봉투까지 뜯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혀 위에 올리는 순간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다. 그래, 예전에 초등학교 앞에서 사먹던 바로 그 맛이다. 녹여 먹다 깨물었을 때의 느낌도 똑같다. 이미 현기증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멀리 사라졌다. 어느새 난 예전의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있던 것이다. 다른 사탕도 마찬가지다. 모두 예전의 그 맛. 어쩜 그렇게 깨물어 먹다 입천장을 베서 사탕맛과 피의 찝찔한 느낌이 섞여있는 맛까지 똑같은지.

내일은 검진일이다. 내일 이후로는 이 사탕을 먹을 일이 없고, 먹을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아직도 내 가방 속엔, 그리고 내 손에는 사탕이 쥐어져있다. 남은 사탕은 지인들에게 추억에 젖게 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한지훈 도서출판 스테레오마인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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