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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책의 향기]약자의 희망이 된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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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피터 슬레빈 지음·천태화 옮김/520쪽·2만 원·학고재

동아일보

어린 두 딸을 돌보는 데 지쳤던 미셸은 새벽에 운동하러 나가는 방법으로 남편을 육아에 참여시켰다. 버락 오바마는 헌신적으로 자녀를 키운 장인을 아버지 역할의 롤 모델로 삼았다. 왼쪽부터 큰딸 말리아, 미셸, 버락, 사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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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 흑인 빈민가에 사는 여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 아이들이 괴롭혔고 프린스턴대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교사들은 성적에 비해 눈이 너무 높다고 했다. 여학생은 혼란에 빠졌지만 당당히 대학에 합격했고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부인이 됐다. 미셸 오바마(53)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일한 뒤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된 저자는 가난한 흑인 소녀가 백악관의 안주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세밀하게 엮었다. 당시 시카고는 인종 차별의 뿌리가 깊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행진을 한 후 “남부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시카고처럼 적개심에 가득 찬 행위는 보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 미셸과 오빠는 교육열 높은 부모 덕분에 꿈을 갖고 자랄 수 있었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와 정수장에서 일하며 퇴근 후 야구, 농구, 축구, 미식축구를 함께하는 아버지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너 역시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선택뿐이다.”

저자는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미셸의 개인사와 사회·정치적 성취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미셸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지기 싫어했던 미셸은 늦은 밤은 물론 새벽 4, 5시에도 일어나 공부하던 악바리였다. 키 180cm로 육상 선수로 잠깐 활동했지만 키 큰 소녀도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운동을 더 하지 않았다.

미셸은 프린스턴대에 들어간 후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BMW를 운전하는 성인조차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차를 몰고 다니는 학생을 보며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 시카고 빈민가를 개선하기 위해 풀뿌리 정치 운동을 하던 버락 오바마와의 만남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법. 학생 봉사 활동 사무실을 이끌며 집안일을 하고 두 딸을 키우는 ‘독박 육아’에 지친 미셸이 버락에게 “당신은 자기 자신만 생각해”라며 따지는 모습은 여느 직장맘과 다름없다. 버락의 대선 출마를 허락하며 미셸이 내건 조건은 금연이었다. 골초였던 버락은 니코틴 패치 없이 담배를 끊은 비결에 대해 “마누라가 무서워 죽겠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빠듯한 형편에 정치에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고, 백악관 입성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간 과정과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분위기도 실감나게 그렸다. 강하고 화끈한 그의 성격도 확인할 수 있다. 유세 논조가 부정적이고 신랄하다는 비판에 참모들이 어투를 순화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하자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분개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어 “선거운동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고 말할 때는 정치인의 아내 역할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듯하다.

미셸은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끈질기게 붙잡으려 애쓰라는 당부를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웅변한다. 흑인을 비롯해 가난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일일이 포옹하며 꿈을 심어준 건 그가 뿌린 가장 의미 있는 씨앗이 아닐까. 원제는 ‘Michelle Obama: A Lif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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