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가구 4분의 1 소득 30% 임차료 내
지대추구 본능, 사라지진 않겠지만 수익률 낮춰야
보유세 인상 통해 주거안정 시키고 혁신의 동력 깨워야
하준경 한양대 경상대 경제학부 교수 |
최근 여당 대표가 농지개혁을 거론해 화제가 됐다. 1950년 3월의 농지개혁은 한국 경제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정책이다. 당시까지 경제를 지배해 온 지주-소작 관계를 끝내고 새 질서의 토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출의 반을 지주에게 내던 소작농이 소출의 30%를 5년간 국가에 내면 경작지를 가질 수 있었다. 연소득의 1.5배에 내 땅을 얻고 임차료를 영구 면제받은 농촌 젊은이들은 전쟁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고, 이후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됐다. 경자유전과 소작금지의 원칙은 헌법 121조에 새겨져 있다.
농지개혁은 단순한 재분배 정책이 아니었다. 국민이 지키고 싶은 나라를 만들었으니 강력한 안보정책이었다. 농민의 소득을 높여 내수 기반을 다졌고, 경제 활동의 중심축을 지대추구로부터 교육과 기업 활동, 즉 인적·물적 자본 축적으로 돌렸으니 효과적 성장정책이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진보 인사 죽산 조봉암이 기안하고 대지주 출신 인촌 김성수가 적극 수용했으니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농지개혁 이후 60년이 넘은 지금, 지대추구는 다시 경제의 중심부로 돌아왔다.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최상위가 건물주다. 토지자산 총액은 국민소득의 4.2배가 넘어 일본 프랑스 호주의 2.4∼2.8배를 크게 앞선다. 소득의 30% 이상을 임차료로 내는 가구가 4분의 1이 넘고, 집 때문에 빚진 가구는 소득의 3분의 1을 원리금 갚는 데 쓴다.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어린이들이 땅주인보다 과학자나 기업가를 꿈꿨던 시절이 예외였는지 모른다.
가만히 앉아 돈을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지대추구 본능은 없앨 수 없지만 이를 생산적으로 변환시킬 수는 있다. 경제학에서 지대는 토지임대료(자릿세)에 국한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로 독점권을 보장받거나 경쟁을 막아 발생하는 초과 이윤도 경제적 지대다. 기술 혁신으로 생겨난 특허권이나 지식재산권에서 나오는 수입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즉, 지대추구 본능이 비생산적 ‘지대추구 행위’, 예컨대 임대주택 막아내 집값 올리기, 정치권에 로비해 경쟁 피하기, 진입 장벽 쌓기 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기술특허권, 문화콘텐츠 소유권 같은 생산적 자산을 만드는 동력이 되게 유도하자는 것이다.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혁신도 지대추구 본능을, 초과 이윤을 미끼로 해서 기업가 정신으로 승화시킨 것과 다름없다. 혁신 기업가가 계속 나오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바로 지대개혁과 혁신 성장의 핵심이다.
한국의 기존 제도와 관행은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혁신보다 지대추구에 유리하게 됐다. 성장 기회는 줄어드는데 부동산 패러다임은 그대로여서 좋은 위치의 땅을 선점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가 됐다. 강자 주도의 시장질서는 진입 장벽을 쌓아 희소성과 독과점 지위를 유지하려는 퇴행적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다. 부동산·교육·노동시장, 대·중소기업 생태계 모두 잠재적 경쟁자를 배제하는 데 주력한다. 대학 기숙사 신축을 막아내며 ‘어떻게 올린 집값인데’라고 되뇌는 원룸 주인은 솔직한 편이다. 주요국 중 한국처럼 상속자가 부자 순위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는 없다. 도전은 장벽에 좌절되니 ‘다이내믹 코리아’가 ‘헬조선’이 된다. 장벽 안에서는 장벽 쌓기에 지친 이들이 신분제 부활을 꿈꾸기도 한다. 소모적 지대추구의 끝은 신분사회다.
지대추구와 저성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지대추구 대상의 희소성을 줄이면서 동시에 지대추구의 수익률을 낮추고 혁신의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다. 조세 금융 경쟁 등 모든 정책이 일관되게 짜여야 한다. 그래서 부동산 보유세도 회피해선 안 된다. 보유세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니 안 된다면, 지대추구 대상인 위치값에 누진과세를 하되 주거복지를 확충해 대다수 국민의 세금을 포함한 주거비가 오르지 않게 제도를 설계하면 된다. 실현된 (현금)이익이 없는 고가 주택 소유자에게 징세하기 어렵다면 해당 지분을 담보로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하면 된다. 부동산을 금융화해서 올려준 집값이니, 집값으로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기도 어렵지 않다.
지대추구 행위와 혁신 행위는 모두 지대추구 본능에 뿌리를 두지만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정반대다. 넘쳐나는 지대추구 욕망을 혁신의 동력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농지개혁에 맞먹는 시대적 과제다.
하준경 한양대 경상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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