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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갈라파고스 북한 … 국제제재에 갇혀버린 외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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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끄떡없다”던 김일성

미국 압박에 스트레스 시달려

핵 실험에 제재 무용론 대두

체제 내부엔 충격파 클 수도

군사노선에 명운 건 김정은

국제 외톨이 전락 안타까워

제재는 늘 도발적 행동을 응징하는 데 역부족으로 보인다. 뒷북이란 인상도 준다. 유엔 대북 결의처럼 다자간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 특히 그렇다. 11일(현지시간) 나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75호도 마찬가지다. ‘솜방망이’란 혹평도 제기된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서 보면 상황이 확 달라진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고 낙타의 등을 부러트릴 지푸라기 한 가닥이 될지 모른다. 북한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북제재는 어떤 모습일까.

김정은이 6차 핵 실험 버튼을 누른 지난 3일 낮. 베트남 하노이 외곽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남북한의 학자·전문가와 당국자들이 함께한 비공개 회합 자리에 핵 실험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단은 급히 버스를 세운 뒤 숙의를 거쳤고, 즉각적인 서울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 측 단장은 “귀측의 핵 실험 도발로 더 이상 이 만남은 의미가 없어졌다. 매우 유감이란 점을 평양 당국에 전해 달라”며 자리를 떴다. 당혹스럽기는 행사를 주선한 독일의 한 비영리재단 측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관심을 보여 온 산림 녹화와 환경 보존 분야 대북 지원을 요청하러 나온 북측 관리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고 귀띔했다. 대외경제성과 국토환경보호성 소속인 이들 관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관련해 한·독 측 인사들에게 뜻밖의 얘기도 꺼냈다. 한 북 측 관리는 “공화국(북)에 대한 제재가 이리 엄혹한데 어떻게 어렵지 않다고 하겠나. 지내(매우) 힘들다”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월급이 북한 돈 3000~5000원 수준인데 4인 가족이 한 달 살려면 50만원이 든다는 말도 했다. 장마당에 주로 의존하는 민생 분야까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에 끄떡없다고 호언장담하는 관영 선전매체의 주장과 달리 내상(內傷)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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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은 이런 내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6차 핵 실험 ‘완전 성공’을 발표한 이후 연일 잔치 분위기를 이어간다. 평양과 지방도시에서 축하 군중집회가 줄줄이 열리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는 찬양 선전물이 봇물을 이룬다. 어제 아침 노동신문은 활짝 웃는 김정은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대북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의도다.

김일성 통치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존재 자체로 두통거리였던 미국에 대한 반감은 김일성이 남긴 발언 곳곳에서 확인된다. 1994년 7월 6일 열린 경제 부문 책임일꾼협의회에서도 김일성은 “대북제재에 끄떡없다”며 허풍을 떨었다. 1차 북핵 위기 여파로 대북 선제타격이 검토될 정도로 한반도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다. 그는 당시 중재차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카터에게 미국이 핵 문제를 유엔에 끌고 가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 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해 줬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면서도 별일 없이 살아 왔는데 이제 제재를 더 받는다고 못 살아갈 줄 아는가라고 말해 줬다”고 전했다. 이어 “그랬더니 카터는 자기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를 취소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김일성 저작집 44권』, 1996년 평양). 특유의 자기과시와 과장이 더해진 언급이지만 김일성이 미국의 대북제재로 인해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김일성은 이 발언 이틀 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대북제재로 인한 스트레스는 김정일 집권시기에도 이어졌다. 미국이 대북 압박 차원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2500만 달러(약 281억원)를 동결하자 북한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 국무부 관리가 “우리는 살짝 팔만 비틀어 주려 했는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리자 꼼짝 못하더라는 얘기다. 천영우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고작 2500만 달러에 왜 집착하나. 6·15 정상회담 때는 몇 억 달러를 남측에서 받기까지 했으면서…”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김 부상은 귀엣말에 가깝게 “액수는 문제가 아니다. 센 조직의 돈이기 때문이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두고 김정일의 해외 자금이나 핵심층 또는 군부의 돈이란 얘기가 나왔다.

안보리 대북 결의 2375호에 원유 공급 전면 중단 등이 빠지면서 ‘반쪽짜리’란 지적과 함께 대북제재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초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핵·미사일 도발은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의 주장이나 선전영상을 꿰뚫어 보면 제재 속에 고민하는 김정은과 북한의 속살이 드러난다. 대북제재의 약발이 없다는 목소리에 김정은은 아마 “니들이 겪어 봤나. 당해 보면 꽤 아프다”고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6년 동안 극단적 고립에 빠졌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이란 북한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됐다. 김정은이 지금까지 4차례의 핵 실험과 59회의 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전례 없는 도발을 벌이며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어지럽힌 게 핵심이다. 초라한 그의 대외 관계 통치 성적표가 이를 입증한다. 권력을 잡은 뒤 해외 방문을 한 번도 못한 건 물론이고 중국·러시아 등 후견 국가와의 정상회담조차 없었다. 6차 핵 실험 이후엔 멕시코에 이어 페루 주재 북한대사가 추방됐다. 이해당사국이 아닌데도 두 나라가 이런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는 건 외톨이로 전락한 북한의 처지를 잘 보여 준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상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는 에콰도르 해안에서 926㎞나 떨어져 있다. 고립된 생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섬 고유종(固有種)의 동식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외부와 담을 쌓고 자기들만의 논리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집단이나 체제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갈라파고스에 비견하는 건 전대미문의 폐쇄적 특성 때문이다. 김일성의 ‘고슴도치론’으로 대표되는 방어기제에 ‘반미’를 기치로 한 통치 이데올로기가 이를 드러낸다. 김정은은 핵·미사일을 앞세운 극단적 군사노선에 체제 명운을 걸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해진다. 겉으로 태연한 척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고독과 절망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해외 유학파(스위스) 출신으로 집권 초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정은이라 그의 핵 질주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영종 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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