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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최저임금 오르면 대기업 직원이 더 큰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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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토론회서 쏟아진 지적

상여금·숙식비 등 비정기적 임금

지금 제도선 최저임금에 포함 안돼

근로자간 임금 격차 더 커질 수 있어

업종·지역 특성 반영해 제도 바꿔야

중앙일보

12일 경총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제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패널들은 문제점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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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매달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으로 150만원, 상여금과 추가 근무수당 등으로 160만원을 받는다. A씨의 월급 총액(310만원)은 최저임금을 훨씬 웃돌지만, 현재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적용하면 A씨도 최저임금 기준 적용 대상이다. 상여금, 추가 근무수당 등 일률적이지 않은 금액(160만원)은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월 209시간을 일하는 A씨의 시급은 7177원(150만원/209시간)으로, 회사는 내년부터 오르는 최저임금 기준(7530원)에 맞춰 기본급 등을 올려줘야 한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오른 7530원으로 확정되면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가 산업계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에는 기본급·직무수당·직책수당 등 매달 1회 이상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만 산입된다. 반면 상여금을 비롯해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급식·주택 등 생활보조수당, 현물이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급여 등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상여금 등을 뺀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기업들은 그만큼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2일 ‘최저임금제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고,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동시장 현실을 감안해 각종 정기 상여금과 수당·숙식비 등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요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최저임금이 2020년 1만원까지 오르고, 각 연도의 상여금은 최저임금 인상분에 연동해 늘어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르면 오히려 고액 연봉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더 많이 보는 모순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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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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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신입사원 B씨는 올해 임금 총액이 3940만원이지만 각종 상여금 2050만원을 빼면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은 1890만원이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그의 임금 총액은 2020년 6110만원에 달하게 된다. 현재 이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중 B씨처럼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이 1만원에 못미치는 근로자는 61%에 달한다.

숙식을 제공받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내·외국인 간 ‘인건비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현재 최저임금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 C씨가 올해 받는 임금 총액은 3370만원이다. 이 가운데 연간 숙식비 560만원, 상여금 등 940만원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2020년에 C씨가 받는 임금 총액은 4890만원까지 오른다.

김 교수는 “본국 송금 등으로 내수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외국인 근로자가 협소한 산입 범위 덕에 내국인보다 더 큰 수혜를 받게 된다”며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에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 복지성 급여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현 최저임금 제도는 30년 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춰 제정한 것”이라며 “저임금 근로자보다 대기업 직원 등 고연봉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를 누리고, 이로 인해 임금 격차가 커지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선진국을 살펴보면 영국·프랑스·아일랜드 등은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에 상여금·숙식비가 들어간다. 미국·일본은 상여금은 제외하지만, 숙식비는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명목상 최저임금은 이들보다 낮지만 지금 같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최저임금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통상임금 판결에서 보듯이 통상임금의 범위는 확대되고 있는데,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를 협소하게 유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업종·지역별로 사업여건·지불능력·생산성·생계비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 총액은 많은데 최저임금법 위반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도 생긴다. 윤장혁 화일전자 대표는 “내년 최저임금이 2007년의 두 배 이상으로 인상된다”며 “이는 기업의 해외이전을 가속화하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들을 폐업과 범법자로 내모는 동시에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족’을 양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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