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처방으로 환자의 음주횟수 줄이고 분노조절
질병만 치료하는 양약과 달리 신체·정신 문제 해결
부부싸움. [사진 smartimag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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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부간의 문제를 호소하며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아직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고려할 때 여성이 남성보다 부부 문제로 더 고통받는다.
결혼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심한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건 예사다. 술과 바깥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육아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 우울증에 시달린다. 남편의 외도에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기도 한다.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남편에 억눌려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여성도 있다. 가정생활에 무관심한 남편이 평생을 직업없이 도박과 술로 보내 가계를 책임지는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반대로 요즘은 남성 쪽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예를 들면 부인의 성격이 너무나 완벽해 남편 일에 일일이 간섭함으로써 충돌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인의 씀씀이가 심해 빚까지 지는 바람에 부부싸움으로 번진 사례도 있다.
물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화목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시선과 자녀 교육상 참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는 부부가 급증하는 현실이다. 노년의 부부가 법적 혼인 관계는 유지한 채 따로 사는 '졸혼'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이혼 부부, 정신과적 문제 많아
이혼.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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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거에 비해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이 정신과 환자가 증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환자들은 대개 가정불화가 원인이다.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는 부모의 갈등에 따른 심한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다. 더구나 부모의 이혼은 심각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든든한 가정의 울타리가 사라지면서 불안해지고,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분노가 형성되며,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쌓여 심하면 ‘망상증세’를 보인다.
연애시절에는 결혼을 꿈 꿀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왜 결혼 후엔 심한 갈등을 빚으며 이혼까지 가는 걸까? 결혼 전엔 상대에 대한 ‘신비감’으로 기대치가 부풀려지며 허상을 키운다. 말도 부드럽게 해주고, 나만 사랑해주고, 가정에 책임을 다하는 인물을 상상속에 설정하지만, 결혼 후엔 그 환상이 깨지는 가운데 다른 배우자와 비교가 시작되면서 갈등이 깊어진다.
위기의 부부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장점은 크게 보고 단점은 과감히 버리는 훈련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지 자기의 프레임에 억지로 끌고 들어오면 안되는 것이다.
부인이 알코올 중독이라며 거의 반강제로 끌고 내원한 남편이 있었다. 그 부인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어김없이 술을 찾아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안 된다며, 알코올로 인한 후유증을 한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한 시간 넘게 부인의 과거를 들어봤다. 그는 워낙 밝고 사람들을 좋아해 술을 친교의 수단으로 즐기는 것이었지 중독환자는 아니었다. 결혼 전 남편은 오히려 이러한 밝은 성격이 좋아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우호적이던 남편이 결혼 후에 딴 사람으로 변해 심한 언어 폭행을 일삼아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부부싸움.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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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고 짜증이 나게 되면서 친구들과 술을 찾았다. 그럴수록 남편은 알코올중독 치료가 필요하다며 정신병원에 강제입원까지 시켰다. 서로가 상대를 인정하기는 커녕 원망만 가득했다. 부부는 서로를 자기 식대로 인식하고, 재단하고,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자기 주장만 고집하는 불안하고 위험한 동거였다. 남편의 과거를 추적해보니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이혼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그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부인의 음주행위에 과잉 대응했던 것이다.
고대치유의학서인 『상한론(傷寒論)』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위에 예로 든 환자가 술을 찾는 심리적 동기는 서글픔과 짜증이었다. 이런 원인을 『상한론』은 ‘심중계이번(心中悸而煩)’으로 서술하고 있다.
계(悸)는 가슴 두근거리는 현상으로, 불안하거나 서운한 마음이 생기면 자꾸만 눈물이 나는 신체적 변화를 함께 유발한다. 연이어 분노와 짜증이 나는 것을 확인하고, ‘소건중탕(小建中湯)’ 처방을 내렸다.
신기한 ‘소건중탕’
이 한약을 복용하고 나니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던 환자가 가뿐하게 일어나 남편에게 아침도 차려주고 아이들을 등교도 시켜주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약으로 과연 정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심하던 남편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환자 스스로도 하루를 기분 좋게 출발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가 있겠다는 긍정적 마인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섭섭하고 서운해 하며 짜증을 나는 증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자연 친구와 술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점점 집으로, 아이들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인제공자였던 남편도 이런 부인의 변화에 감동을 받기 시작해, 함께 치료받기를 원하게 됐다. 상대의 단점으로 보이던 것들이 사라지고 자신의 문제점에 눈을 떴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자기 성찰로 허상은 걷히고, 예전 사랑의 감정이 넘치는 부부로 회복해 가고 있다. 한약으로 몸의 변화가 마음을 움직여 부부가 달라지는 ‘작은 기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 셀리 케이건 지음.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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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한약 처방이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을까? 셜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인간은 특정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육체’라고 정의한다. 사람이 특정한 감정과 그에 따른 행위를 일관되게 오랜 세월 지속하면, 이에 맞춰 인체에 일어난 변화가 고착화하면 질병이 된다.
한약은 질병자체를 타깃으로 하는 양약과 달리,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마음과 행동이 흐르는 방향을 정상 궤도로 교정시켜준다. 따라서 원치 않게 지속되던 감정과 신체 현상도 정상으로 회복시켜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요즘 부부문제로 상담 치유 프로그램을 찾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근원적인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상담 시에는 수긍하고 교정을 시도하지만 굳어진 몸과 마음은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약이라는 생약배합처방이 비정상적으로 굳은 육체를 정상화시키면 그런 육체를 유발한 내면의 정신적·정서적 부분까지 정상화시켜 회복시키니, 한약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노영범 대한상한금궤의학회 회장 neoherb@hanmail.net
[제작 현예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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