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서울시립대 몰카 사건’ 전말…일부서 ‘자작극’ 몰아갔지만 경찰 "몰카범 입건후 여죄 수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대 후문 몰카 사건 제보 “너무 소름돋고 무서웠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수 있는 야한 동영상 같았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저였어요.”

지난 1일 오후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시립대학교 대나무숲에는 “몰래카메라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됐다”는 내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글쓴이는 “세세한 건 그놈이 내가 어디 사는 누군지 알아챌까봐 말하지 않겠다”며 “범인은 우리학교 학생이었다. 어제 경찰서에 갔다가 우리집 화장실이 찍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한 동영상 같아 보이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나였다. 그때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며 “너무 무섭고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나 혼자 있었던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보고 있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게 너무 소름돋고 무서웠다”고 썼다. 또 “내가 그 놈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건 우리학교 학생이라는 것과 후문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 뿐이었다”면서 “그놈은 지금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속돼 있다. 피해자가 자그마치 몇십 명이나 되는데 그 영상 속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서 형사님도 ‘피해자들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고 적었다. 제보자의 주장은 본인이 ‘몰래카메라’(몰카)의 피해자이고 가해자는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것이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부 학생들 “후문 몰카범글은 조작이다”

몰카 피해를 당했다는 글쓴이의 제보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글을 본 일부 시립대 학생들이 이 사건을 ‘자작극’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동대문경찰서 112 종합상황실 등에 전화를 걸어 사건 진위 파악에 나섰다. 시립대 익명 게시판 등에 “대숲(대나무숲) 몰카 사건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 같길래 방금 동대문경찰서에 전화해봤다. 그런데 담당자 말이 그런 사건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했다”, “후문 몰카범글은 조작이다. 특정사이트에서 남혐(남성혐오)를 하려고 저런 망상글을 쓰고 댓글로 선동하고 있다”, “메갈(메갈리아) 최고의 공격은 몰카 자작극이다. 조작으로 밝혀져도 ‘여자들은 진짜 매일 이런 걱정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하면서 무적의 논리를 펼거다” 등의 글을 올리며 해당 글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실제로 대나무숲에 몰카 글이 올라 온 뒤 동대문경찰서 민원실에 해당 글이 사실인지를 묻는 학생들의 전화가 수십통 걸려왔다.

■경찰 “시립대 학생 몰카 범죄로 입건, 여죄 수사 중”

몰카 피해 사건이 자작극 논란으로 비화되자 결국 시립대 총학생회가 나서면서 진정이 됐다. 시립대 총학생회는 2일 ‘후문 몰래카메라 사건 확인 결과 안내’를 시립대 익명 게시판 등에 올렸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게시물을 통해 “후문 몰래카메라 사건의 사실 여부 등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어 총학생회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다”면서 “동대문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고, 검찰 송치가 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또 “용의자에 대한 신상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했다”며 “경과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겠으며, 의혹 제기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을 피해 학우님께 위로를 드린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대학교 대나무숲 운영자도 이날 ‘긴급공지’ 글을 올리고 “사건 당사자와의 연락을 통해 실제 사건임을 확인했다”면서 “제보와 관련해 진위 확인을 위해 경찰서로 전화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이미 실제 사건임이 확인됐고 전화로 문의했던 학생들에게 답변했으니 더 이상 경찰서에 전화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3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서울시립대 학생이 몰래카메라 범죄로 입건돼 검찰에 송치된 건 사실”이라며 “이미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고 아직 수사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구속된 학생을 상대로 여죄를 수사중이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가해진 ‘2차 가해’

진위 논란은 가라앉았으나 ‘피해자에게 자작극이라 비난한 것은 2차 가해행위나 다름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이모씨(23)는 “피해 여성이 사건을 조작했다며 경찰에 전화까지 한 그 의도가 너무 뻔하다”며 “피해자를 특정 사이트 이용자로 몰면서 왜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인근에 살고 있는 ㄱ씨 역시 “몰카 피해자에게 직접 범죄 사실을 입증하라는 식의 댓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같은 건물에 사는 여학생들과 함께 몰래카메라 탐지기를 공동으로 구입해 건물 전체를 조사해보기로 했다”고 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들의 언어, 목소리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몰래카메라 범죄의 경우 단지 화장실에 간 것만으로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인데, 그런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것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나 지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라며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감수성은 몰카 등 성범죄 문제 해결에 굉장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