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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유럽, 터키 이어 아프리카에도 ‘난민 차단막’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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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국 정상 공동선언 채택…니제르·차드서 사전 심사

유럽이 아프리카 난민들의 유럽행 길목에서 이주행렬의 ‘꼭지’를 잠그기로 했다. 불법 이민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지난해 발칸 루트의 길목이었던 터키에 돈을 주고 난민 송환 협정을 맺은 것처럼 난민 관리 책임을 제2, 제3의 국가로 떠넘기려는 것이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4개국 정상들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니제르·차드·리비아 등 아프리카 3개국 정상들과 만나 난민 신청자를 사전에 심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유엔난민기구나 니제르·차드 정부에 등록하면 심사를 거쳐 합법적으로 입국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은 이 과정을 거치면 테러와 불법 체류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의를 주선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인신매매, 불법 무기와 마약이 지중해를 묘지로 만들고 있다”며 이번 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유럽은 불법 이민, 밀입국 조직과 싸워야 할 인도주의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난민 150만명 이상이 들어온 유럽은 수용 능력의 한계를 넘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2014년 이후 정정이 불안해진 수단·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등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려는 이들이 급증했다. 올해 들어 아프리카를 떠나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온 난민이 12만명을 넘는다. 특히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후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리비아는 ‘난민의 허브’가 됐다.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차드 대통령은 “리비아의 위기를 풀지 않으면 난민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아프리카에 1차적 난민 차단막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시리아 난민이 터키로 넘어와 에게해를 거쳐 그리스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취했던 방식과 같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터키에 66억유로를 지원하는 대신 그리스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터키로 송환하는 협정을 맺었다. 연간 200억유로를 아프리카에 투자 중인 EU가 이번 계획에 추가 지출을 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달 EU는 1000만유로를 니제르에 지원했다.

이 조치는 풍선효과를 초래할 우려가 높다. 난민들은 그리스로 갈 수 없게 되자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로 가는 대체 통로를 찾았다. 지난해 1~8월 16만3000명에 달했던 그리스행 난민은 올해 1만4000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이탈리아에는 올해 9만7000명이 들어왔다. 이탈리아가 7월부터 난민구조활동을 강력 단속하자 올여름 들어 입국자 수는 평소의 5분의 1로 줄었다.

리비아 루트가 어려워지자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는 난민이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자들의 테러도 잇따르는 유럽에서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국제구호기구들은 이번 결정이 “공포를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옥스팜과 액션에이드는 공동성명에서 “(유럽의) 국경 관리를 리비아에 아웃소싱(외주화)하는 것을 멈추라”고 했고, 브레드포더월드 독일 본부의 소피아 비르싱도 “유럽은 감당할 수 없거나, 의지가 없는 의무를 다른 나라로 이전시키려 한다”고 밝혔다.

총선을 4주 앞둔 메르켈 총리는 29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이민자를 수십만명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한 2015년 결정은 ‘인도주의적 예외’였을 뿐 장기적 전략의 토대는 아니었다”면서 EU 차원에서 국경 통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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