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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시승기]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전통과 미래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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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동차 브랜드간 기술 격차가 줄어 품질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자동차 제조산업이 자동차 회사가 작은 부품 하나까지 만드는 '통합 제조'가 아닌 여러 부품을 모아 '조립(어셈블리,assembly)'하는 형태로 변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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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자동차 회사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자신있게 내놓은 차를 꾸미기 위해 '기술'이라는 이성적 수사보다 '역사와 정통성' 등의 감성적 수사를 강조하게 된다. 이는 100년이 넘는 자동차사(史)와 함께 한 이른바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익이 비교적 역사가 짧은 대중 브랜드의 그것을 능가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랜드로버가 럭셔리 SUV 레인지로버의 네 번째 모델로 '벨라'를 내세운 이유도 그러하다. 벨라는 레인지로버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1970년보다 앞선 1969년에 모습을 드러냈다. 3도어 레인지로버의 양산을 위한 프로토타입의 이름이었던 것. 이름은 레인지로버의 개발을 감춘다는 취지에서 '감추다', '베일'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벨라(velar)'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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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레인지로버 벨라는 레인지로버의 기원이다. 쌓아온 역사와 레인지로버의 명성이 없었다면 붙일 수 없는 이름이다. 동시에 벨라는 지금부터 쌓아갈 레인지로버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첫번째 모델이다. 1969년 프로토타입 벨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랜드로버가 9월 레인지로버 벨라의 본격적인 출시에 앞서 미디어 시승회를 마련했다. 시승은 서울 한강공원 잠원지구를 출발해 영종도 호텔 오라를 오고가는 약 140㎞에서 이뤄졌다.

◆ 높은 디자인 수준…레인지로버의 미래를 그리다

보통 자동차는 양산에 앞서 디자인과 신기술 등을 대략적으로 소개하고, 관심을 모으기 위해 콘셉트카를 제작하는데, 벨라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제리 맥거번 랜드로버 디자인 총괄은 지난 3월 인터뷰를 통해 "벨라의 디자인 콘셉트를 미리 공개하지 않았던 건 디자인 보안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디자인 모방이 너무도 심해 여러 혁신적인 디자인 요소를 담고 있는 벨라를 미리 보여주기 싫었다는 것. 동시에 미리 관심을 모으지 않아도 성공에 대해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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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맥거번의 호언처럼 벨라는 미래 어디에서 데려온 듯한 진취적인 디자인이다. 벨라의 외관은 어디 하나 각진 구석이 없이 매끄러운데, 공기역학을 고려하면서도 보기에 우아한 느낌을 준다. 문 손잡이를 문 안으로 넣어버린 부분은 이전에 테슬라가 모델S 등에서 보여줬지만 아직까지 익숙한 형태는 아니어서 새롭다. 시속 8㎞ 이상에서 손잡이가 문 속으로 쏙 들어간다.

많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전면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은 헤드램프다. 헤드램프가 작아지면 작아질 수록 고급스럽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전구 크기로 인해 헤드램프 면적을 줄이는 일에 한계가 있었지만 LED 시대에는 디자이너의 상상이 모두 현실로 구현되고 있다. 벨라의 헤드램프는 이전 레인지로버 모델과 비교해 현격하게 얇고 매끄럽다. LED 모듈은 모두 각각 제어돼 최적의 빛 분포를 자랑한다. 얇은 헤드램프는 존재감 높은 새 디자인의 라이에이터 그릴과 조화를 이룬다.

벨라의 비율은 랜드로버의 전통을 모두 따랐다. 앞에서 부터 뒤까지 어느 하나 불안한 구석이 없다. SUV 임에도 스포츠카에서나 볼법한 짧은 프론트 오버행이 이상적이다. 리어 오버행은 전형적인 랜드로버의 작법이다. 오프로드 탈출각을 위해 엉덩이가 한껏 들어 올려졌다. 헤드램프에서 리어램프로 이어지는 측면의 굵은 선은 벨라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랜드로버가 나아갈 길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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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SUV 만들기에 수십년의 노하우를 축적한 회사다. 당연히 어떻게 하면 SUV가 도로 위에 당당하게 서있을 수 있는 지를 잘 알고 있다. 벨라는 그 노하우를 집대성한 제품으로, 애초에 SUV나 세단이라는 형태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했다는 게 제리 맥거번의 설명이다. 그래서 지상고는 SUV처럼 높되, 키는 작다. 역동적이지만 우악스럽지 않다. 덕분에 공기저항계수는 SUV 치고는 낮은 수준인 0.30Cd다. 성능은 물론, 랜드로버가 주력해 온 무게 절감으로 인한 효율 향상에도 기여한다.

실내는 랜드로버 질감 그대로다. 어느 정도 공식처럼 들어간 내부 레이아웃에 고급스러운 소재를 듬뿍 사용했다. 눈이 닿는 곳과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곳이 호사스럽다. 다만 그 중간에 보이는 다소 저렴한 소재들은 아쉽다. 원가 절감 차원이겠지만 눈에 띄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어느 부위는 노골적이다. 럭셔리 SUV 명성에 금이 가는 부분이다.

벨라부터 적용을 시작하는 터치 프로는 물리 버튼의 숫자를 줄여 결과적으로 깔끔한 인상과 하이테크의 호혜가 느껴진다. 물리적인 버튼이나 터치 버튼이나 운전자가 주행 중에 조작하려면 집중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 낫다. 다양한 차량 설정이나 공조 설정, 멀티미디어 조작이 가능하다. 센터 콘솔 한 가운데 부담스럽게 자리 잡았던 터레인 리스폰스 다이얼도 터치 스크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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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도 시원시원하게 디지털 방식이다. 해상도나 선명도 모두 마음에 든다. 속도계와 엔진회전계 등으로 계기판을 구성할 수도 있고, 아예 내비게이션을 옮겨 올 수도 있다. 얼마든지 사용자 편의에 맞춰 조절이 가능하다는 게 디지털의 강점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브랜드면서도 첨단 기술을 아낌없이 쓰는 회사가 랜드로버다.

앞자리 발 밑은 조금 좁다. 센터 콘솔의 너비가 늘어나고, 외부 비율을 강조하다 보니 내부 공간에 약간 침범을 받는 부분이 생겼는데, 앞자리의 레그룸이 그렇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만약 대중교통에서 주변인을 불편하게 하는 쩍벌남이라면 왼발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억지로 다리를 모아야 한다. 쾌적성을 중시하는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용납이 힘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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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리터 디젤 엔진 D240…평균 이상의 질감

랜드로버의 트림명이 바뀌었다. D240, D300, P380으로 구성된 벨라의 트림은 문자와 숫자만 봤을 때 꽤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제원표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금방 알 수 있었다. D240의 'D'는 디젤, '240'은 출력을 뜻한다. 이같은 트림명의 변화는 엔진 장착 트렌드와 궤를 같이 한다. 다양한 제품이 하나의 엔진을 공유하는 사례가 늘면서 배기량에 맞춰 트림명을 정하다 보니 제품 특성이 흐려졌던 것. 그래서 최근에는 성능을 트림명에 넣어 제품 특성을 표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우디가 대표적이다. 랜드로버도 벨라를 기점으로 트림명을 '성능'에 맞춘다.

시승차는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을 얹은 D240 트림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엔진은 24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51.0㎏,m으로 펀치력이 뛰어나다. 여전히 디젤 엔진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ZF가 만든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다.

엔진 회전 질감이 꽤 매끄럽다. 무리없는 가감속이 이어진다. 랜드로버는 최근 세 가지 큰 주제로 라인업을 구분하는데 레인지로버 제품군은 온로드 성능을 중시하는 편이다. 벨라 역시 레인지로버의 일원답게 도로 주행에 있어 큰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육중한 몸매를 민첩하게 움직이지는 2.0리터 디젤로는 한계가 었어 보인다. 속도를 꾸준하게 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폭발적으로 튀어 나가는 실력은 아니다. 2톤이 넘는 큰 SUV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순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달렸다. 원하는 속도를 원하는 시간에 내려면 적어도 300마력의 3.0리터 V6 디젤엔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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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주행 모드를 지원하는 건 랜드로버의 특징이다. 온로드에서 주로 이용할 수 있는 주행모드는 컴포트, 에코, 다이내믹과 오토(자동) 모드다. 각각의 목적에 맞게 그때 그때마다 터치 스크린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는 진흙이나 자갈, 모래 등 노면 상황에 맞게 차가 적응해 달린다.

키가 껑충한 SUV여도 코너를 돌아가는 실력은 진짜다. 좌우 쏠림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매끄럽게 돌아나간다. 물론 어디까지나 물리법칙 내에서의 이야기다. 다만 그 한계점을 높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코너 안쪽의 바퀴의 제동력을 조절하는 토크 벡터링을 통해 원심력을 줄인다.

승차감도 럭셔리 SUV 답다. 엉덩이에 큰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도로의 굴곡진 부분이나 과속방지턱을 넘나들 때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에어서스펜션 덕분이다. D300부터 기본장착한다. 시승차로 준비된 D240 일반형은 추가 금액을 내면 에어서스펜션을 장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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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40의 연료효율은 복합기준 1ℓ당 10.9㎞로,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심지어 3.0리터 엔진인 D300의 12.8㎞/ℓ도 떨어진다. 2.0리터 엔진이 가진 힘을 최대한 이끌어낸 기술적 특성인 탓도 있고, 생각보다 고속도로 연료효율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벨라 D240의 고속도로 효율은 11.4㎞/ℓ 인데, 정속 주행에서 효율을 최대로 이끌어 내는 디젤 엔진의 특징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은 것 같다. 랜드로버는 2.0리터 디젤의 실연비가 좋다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 레인지로버 라인업의 완성…가격 9850만~1억4340만원

벨라는 여러모로 레인지로버 라인업의 빈틈을 메우고, 새 방향성을 제시하는 차다. 판매 상황에 따라선 애매하게 겹치는 상위 차급인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지위를 흔들 수도 있다. 크기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다. '레인지로버-벨라-이보크'로 이어지는 제품 구성이 뭔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가격은 가장 낮은 등급인 D240 S가 9850만원, D240 SE는 1억460만원, 특별한 가니시와 뱃지로 치장한 D240 R-다이내믹 SE의 경우 1억860만원이다. D300 제품군은 R-다이내믹 SE 1억1530만원, R-다이내믹 HSE 1억2620만원, 퍼스트 에디션 1억4340만원이다. 380마력을 내는 V6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을 얹은 P380은 1억161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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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오는 9월 18일부터 벨라의 공식 판매에 나선다.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랜드로버인 만큼 벨라 역시 성공이 어느 정도는 예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조금 눈에 띄지만, 진취적인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실내, 준수한 성능과 브랜드가 주는 신뢰감을 떠올려 보면 성공을 점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IT조선 박진우 기자 nichola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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