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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新견생열전` 의뭉 입양견과 초보 반려인의 좌충우돌 동상이몽 | 정녕 허니문은 이대로 끝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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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저 이도 힘이 들겠지. 내가 오고 신경 쓸 일도 늘고 바쁘겠지. 내 그걸 모르는 바 아니나, 그만한 각오도 없이 나를 데려온 건가 싶어 한숨부터 나오는구려. 휴.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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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쁘지 않았소. 고급 사료에, 삶은 닭가슴살, 데친 야채에 온갖 간식과 캔도 차려 냅디다. 그러다 사료에 섞어 주는 닭가슴살 양이 조금씩 줄기 시작하는 거요. 괘씸한 마음이 들었으나, 몸도 전보다 고달플 테고 워낙 없는 형편이라 모른 척 넘어가 주었지. 하지만 줄어든 것은 먹거리뿐 아니었소. 산책을 나가서는 남우세스러울 만큼 내 뒤를 쫓아 오며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칭찬하더니, 돈 한 푼 안 드는 그 칭찬마저도 점점 줄더란 말이오. 기분 탓 아니냐고? 어허, 이거 왜 이러시오. 그쪽이 내 말을 못 믿는 것 같으니 조목조목 사례를 열거해보리다.

이 집에 오고 사흘째 되던 날 오후였소. 저 이는 나가고 혼자 집에 있는데 사방이 낯설고 마음이 그렇게 허허로울 수 없는 거라. 침대로 올라가 폭신한 이불 위에 배를 대고 엎드리니 오묘한 감정에 휩싸이며 맥이 탁 풀리지 뭐요. 그런데 맥과 함께 엄한 것까지 풀어져 그만 이불 위에 지도를 그리고 말았소. 아차 하는 순간은 잠시, 어째선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 돼 버려 양껏 누고는 잊었지. 저녁에 저 이가 들어와 이불 위의 지도를 발견하고 그 아래 패드를 확인하고, 또 그 아래 매트리스를 확인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휴대폰을 들고 뭔가를 찾아봅디다. 그러고는 스팀청소기와 스프레이, 선풍기를 들고가 한참을 ‘윙윙 칙칙’ 시끄럽게 굴더니 나를 불렀소. 습진 관리하느라 열심히 발가락을 핥던 나는 끌려가다시피 안방으로 들어가 십 분 넘게 정좌하고 잔소리를 들어야 했소. 그런 중에도 연신 발가락이 가렵고 졸음이 몰려와 문득문득 고개가 떨어졌는데, ‘반성하는 기미’가 안 보인다며 열을 내는 그이를 안타까이 여기다 까무룩 잠들고 말았지.

이런 일도 있었구려. 저 이는 백수라면서도 바깥 출입이 잦습디다. 그래도 아침에 나가면 점심 때는 들어와 간식이라도 챙겨 주고 다시 나가는데, 그날은 정신이 없었던지 그냥 가 버렸소. 서너 시쯤 됐으려나. 배가 고파 어슬렁거리다 보니 산책 가방에서 간식 냄새가 나더구먼. 제법 높은 데 걸려 있었으나 투지와 지혜로 가방을 끌어내렸소. 그 뒤는 뭐, 상상하는 대로요. 쩝. 정말이지 치사해서! 내 진심으로 쉬고 싶을 때 저 이 친구들이 줄줄이 집에 와도 별말 안 했고, 사료 나부랭이 던져주고 저는 닭다리 뜯을 때도 두어 번 넘보다 깨끗이 양보했으며, 플리마켓 구경 간다 해서 두 시간 동안 차에 시달리고 바닷바람까지 맞아 줬는데! 산책 가방 뒤져서 간식 좀 꺼내 먹었기로서니 눈을 부라리고 콧등까지 때리는 건 도가 지나치지 않소? 어휴, 개탄스럽게도 인생은 주는 만큼 되돌려 받는 건 아닌 듯 싶소. 티격태격 가타부타 시시비비는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허니문이 끝났다고 생각한 일은 따로 있소.

그러니까 며칠 전이었소. 장마 뒤라 산책 길 여기저기에 지렁이들이 말라 붙었는데, 어째선지 그 냄새를 견딜 수가 없더란 말이지. 그래서 지렁이 위에 누워 몸을 좀 비볐기로서니 그게 비명을 지르고 산책 내내 내 몸에 손도 안 댈 만큼 잘못된 일이오? 집에 도착하고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구석구석 씻기며 “가뜩이나 늦었는데 언제 목욕시키고 털 말리고 화장해서 나가냐”며 타박이 이만저만 아니었소. 서러운 생각이 왈칵 들며 그때 불현듯 깨달았지. 아, 호시절은 갔구나!

이제 겨우 한 달 지났을 뿐인데 어찌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하는지. 요즘 나는 분하고 앞날이 걱정돼 자면서도 몸을 떠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오.

Tip 반려견의 잇템, 지렁이 향수 개가 산책할 때 땅에 몸을 비비는 행동은 본능이다. 개는 몸 전체에 체취 분비선이 있어 특정 대상에 몸을 비빔으로써 영역을 표시하거나 애착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눌어붙은 마른 지렁이는 개들이 선호하는 부비부비 대상 1위쯤 된다. 진흙과 죽은 벌레, 새 깃털, 다른 동물의 배설물 등도 좋아한다. 개에게 사랑 받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지렁이 향수 개발을 기대해봄직도.

[글 이경혜(프리랜서, 수리 맘)]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93호 (17.08.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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