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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아프간에 더 깊이 발담근 트럼프, 개입주의로 본격 선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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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주의' 탈피 예고…배넌 경질 후 확정돼 "軍출신 참모 승리" 해석

아프간 혼란 여전…사상 최장 17년 전쟁 끝내나

연합뉴스

[그래픽] 아프가니스탄 배치 미군 추이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적극 개입을 선언하면서 해당 지역을 넘어 큰 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 변화를 몰고 올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아프간 '전진 경로(path forward)'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TV 시청률이 가장 높은 프라임 타임에 전국으로 생중계해 무게감을 더했다.

아프간에 추가 파병하는 병력 규모를 공개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과 달리 구체적인 숫자와 일정은 밝히지 않았지만,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저지할 것"이라든가 "우리 군대는 이길 때까지 싸울 것" 등의 강경한 어조로 결코 빈손으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회견과 별도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성명을 내 병력 증파를 시사했고, 폭스뉴스 등 미 언론들이 추가 병력이 4천 명 규모라고 잇따라 보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프간 병력 증원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는 현재 주둔하는 8천400명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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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오후 9시(현지시각)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진 경로(path forward)' 전략을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이날 모습을 드러난 미국의 새 아프간 전략은 '아메리카 퍼스트'로 상징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 기조와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내 원래 직감은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것이었다"며 당초 철군을 적극 검토했다가 생각을 반대로 바꿨음을 시사했다.

이런 변화가 스티브 배넌 백악관 전 수석전략가의 경질 직후에 나왔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는 지적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배넌은 대외정책에서 '미국 우선'을 앞세우고, 대외정책에서 미국의 역할을 제한하는 '고립주의' 노선을 주장해왔다.

배넌이 경질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북핵 동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협상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그의 고립주의 시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미국의 전통적 개입주의를 강조하며 배넌과 대립해왔다.

따라서 배넌의 낙마로 맥매스터 보좌관, 매티스 장관 등 안보라인에 힘이 실리면서 이들이 원하는 기조대로 외교·안보 전략을 펴게 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을 경질한 당일인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데이비드캠프에서 국가안보팀과 회의를 하고 아프간 전략을 확정했으며, 3일 후 이를 발표했다.

내용 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간 한 곳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안보 위협에 직면했다고 진단한 뒤 파키스탄의 미흡한 역할을 강도 높게 비난한 것은 매티스 장관이 지난 6월 '지역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 참모 내부의 군 출신 인사들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빠르게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는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해 맥매스터 보좌관, 매티스 장관 모두 군 장성 출신이다.

다만 '강골 군인' 출신 인사들이 외교·안보진용을 장악함에 따라 앞으로 군사력 과시 등 강경노선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개입주의 강화로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이 더욱 단호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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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오후 9시(현지시각)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진 경로(path forward)' 전략을 발표했다. 발표를 듣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왼쪽)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AFP=연합뉴스]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을 늘리겠다는 것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아프간 파병 규모는 2010∼2011년에 10만여명으로 정점을 찍고 점차 줄었다. 미군의 임무도 반군과의 직접적인 지상 교전에서 벗어나 군사자문·훈련, 공중지원으로 옮겨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재선에서 아프간전을 끝내겠다고 공약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다. 이를 넘겨받은 트럼프 행정부 초기부터 아프간 파병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됐다.

국방부는 추가 파병을 권고했지만, 배넌은 파병에 반대하며 민간용병 투입 안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용과 승산 문제를 들어 명확한 전략은 내놓지 않고 숙고를 거듭해왔다.

미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아프간 전략이 '미온적'이라며 반발, 독자적인 추가 파병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을 내리기 위해 외교·안보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국방부, 국무부, 정보당국 등과 폭넓은 회의를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AP는 의사결정에 있어 충동적 성향을 보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분석했다.

퇴역 장성인 토머스 스포르 헤리티지재단 국방연구센터 소장은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까지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이라며 "'빠른 승리'를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7년째 계속되는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가장 긴 전쟁으로 통하지만, 현지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201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간을 공습했고,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을 축출했다. 그러나 여전히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아프간 경찰과 군인 등 2천500여명이 탈레반 등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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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수색 중인 연합군의 모습 [EPA=연합뉴스]



미 국내적으로는 외부 전쟁에 시선을 끌어모아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지니아주 유혈사태를 유발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지지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집권 후 최대 난관에 부닥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승부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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