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재들이 스타트업을 떠나고 있다. 공기업·대기업 대신 스타트업이라는 모험을 택한 청년들이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차라리 중소기업이 더 낫다'며 이직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6월 30일부로 해산)가 6월 스타트업 근무 경험이 있는 15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775명)이 스타트업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텅 빈 서울창업허브 -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서울창업허브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스타트업 취직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급여 등의 이유로 스타트업을 떠나고 있다. /이진한 기자 |
김도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는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만 주목하지만 누군가는 스타트업 직원으로 일해야 한다"며 "아무도 스타트업에 취업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국내 창업 생태계가 무너질뿐더러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스타트업 환상'이 깨진 청년들
청년들이 스타트업을 그만두는 이유로는 낮은 급여(16.1%), 열악한 근무 환경과 복지(14.7%), 고용 불안(12.3%), 폐업(12%) 등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처우는 열악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서울 K대 사회과학계열을 졸업한 김모(27)씨는 지난해 9월 주식정보제공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는 근무하는 동안 계약된 급여 월 200만원 중 160만원만 받았고, 입사 두 달 만에 구조조정을 이유로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그는 "월 매출 1억원도 안 되는 회사에 직원이 40명이었다"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직원은 없고, 종잣돈 몇 푼에 의욕만 앞선 사람들만 넘쳐났다"고 말했다. 화장품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모(29)씨는 "입사 후 10개월 동안 직원 16명 중 6명이 퇴사했다"며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해야 하는데, 젊은 세대들은 이를 황당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입사 후 제품 개발, 마케팅, 총무팀 등으로 명함을 3개나 새로 팠다.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중견 식품기업에 다녔던 장모(28)씨는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싫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한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장씨는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요하고 사장 한 마디에 출근 시간이 30분 당겨졌다"면서 "서류작업도 전통 기업 못지않게 많고 상하 간 소통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차량공유 서비스 스타트업에 다니다 올해 1월 퇴사한 이모(30)씨는 "신입이라는 이유로 가습기·정수기 청소 같은 잡일에 팀장 커피 심부름까지 했다"고 했다. 1년간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지난 3월 퇴사한 임모(27)씨는 "한 달에 열흘 넘게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했고 주말에도 일했다"며 "반년 치 밀린 월급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겨우 받았지만 퇴직금은 못 받아 현재 민사소송을 넣은 상태"라고 했다.
◇대졸자의 절반 "스타트업 취업 싫다"
올 상반기에 스타트업을 포함한 신설 법인 수는 4만9424개로,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양적 팽창과는 달리, 스타트업의 일자리 질(質)은 개선이 안 돼 고질적인 인재 유출 문제를 떠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의 작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예정자의 49%가 '스타트업 취업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5년 같은 조사(15.5%)에 비해 부정적인 의견이 세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우진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부원장은 "젊은 창업자들은 조직 생활에 대한 경험 없이 회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재무나 인사·조직 관리에서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 대부분 스타트업들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상순 서울시립대 경영대 교수는 "정부가 스타트업에 자금만 지원해주고 무작정 창업으로 내모는 것은 총 한 자루 던져주고 전쟁터 보내는 '학도병식 창업 지원'"이라며 "정부가 보여주기식 실적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젊은 사업가를 위한 노무·인사·재무와 같은 창업 교육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고 했다.
임경업 기자(up@chosun.com);류영욱 인턴기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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