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몰카 단속에 나선 사복 경찰들이 한 남성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찍은 사진을 넘겨보고 있다. [사진 제공 = 부산상공회의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내 여름경찰서. 며칠째 계속되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푸른 제복을 입은 10여 명의 경찰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전기로 이런저런 보고를 받던 박근칠 해운대해수욕장 여름경찰서장이 "사복조 투입"이라고 지시하자 이재일 경위와 이상진 순경은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재빠르게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두 경찰은 피서객이 북적대는 해변에서 계속 두리번거리며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20분쯤 뒤 이 경위가 조용히 모래사장 쪽을 가리켰다. 휴대전화를 들고 계속 '찰칵찰칵' 셔터음을 내는 수상한 남자가 포착됐다. 경찰은 일단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수상한 남자의 주위를 둘러쌌다. 이 경위는 지갑을 꺼내 본인 신분을 밝힌 뒤 수상한 남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찍은 사진들을 넘겨봤다. 수십 장의 사진을 확인한 이 경위는 별다른 혐의점이 없자 "노출이 심한 피서지에서 카메라를 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면 오해받거나 시비가 걸릴 수 있다"며 주의를 주고 경례했다.
이 경위는 "피서객이 몰리는 6~8월은 몰카 등 성범죄가 가장 늘어나는 시기"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30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에선 미얀마인 A씨(27)가 조사를 받았다. 그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카메라에는 비키니를 입은 20·30대 여성들의 가슴과 민감한 부위들이 찍힌 사진 여러 장이 담겨 있었다. 신체 노출이 심해지는 여름철 몰카범·성폭력 범죄자들이 활개치는 곳은 해변, 수영장 등 피서지뿐만이 아니다.
같은 날 오전 7시 40분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이날 기자와 지하철 몰카·성추행범 암행 단속에 나선 서울지하철경찰대 소속 이윤희 경위는 "범죄 대상을 물색하느라 끊임없이 두리번대거나 갑자기 반대편 승강장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타깃"이라며 "눈빛만 봐도 몰카범·성추행범이라는 직감이 온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함께 단속에 나선 양종원 경장과 북적이는 지하철 내에서 수시로 눈빛과 수신호를 주고받던 중 불과 1시간 만에 현행범을 검거했다. 혜화역을 지나는 열차에서 한 남성이 손잡이를 잡는 척하며 한 여성 뒤에 가까이 서더니 하반신을 여성 신체에 밀착한 채 '추행'하는 장면을 적발했다.
이 경위는 이 과정을 옆에서 동영상 증거로 확보한 후 명동역에서 피해 여성과 함께 내려 강제 추행 여부를 추궁했다. 남성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채증 영상을 보여주자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아이러니하지만 '몰카범'을 잡기 위해선 경찰도 몰카로 증거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잡히면 백이면 백 딱 잡아떼고 역정부터 내며 고소하겠다고 거꾸로 난리를 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에는 현역 국회의원 아들인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몰카를 찍다 검거된 후 여러 컷의 여성 신체 촬영 사진이 나오자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앱이 작동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암행단속에서 현행범으로 검거된 40대 초반의 남성은 이벤트업체 프리랜서로 이미 동종 전과를 갖고 있었다.
손우용 지하철경찰대 기동반장은 "이렇게 대놓고 성추행을 하는 범인들은 오히려 검거하기 쉽지만, 더 골치 아픈 지하철 내 성범죄는 나날이 발전하는 초소형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몰카범들"이라고 말했다. 가방이나 볼펜, 자동차 키 등에 설치된 초소형 카메라는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한다. 이 경위는 "전에는 한 남성이 계속 여성의 다리 사이에 발을 집어넣길래 수상하게 여겨 따라갔더니 신발에 작은 구멍을 뚫고 카메라를 설치해 놨었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경찰대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8월 10일 현재까지 서울 지하철 내 성범죄 발생 건수는 91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67건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피서지에선 외국인 '몰카범'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박 서장은 "올해 해운대 몰카 적발 건수가 총 9건인데 이 중 7건이 동남아 등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에는 부산과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많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선 몰카가 범죄가 아니어서 잘 몰랐다"는 황당한 핑계를 많이 댄다고 한다.
[부산 = 박동민 기자 / 서울 = 박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