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관음의 나라] 몰래 찍고… 보고… 관음에 중독된 사회

댓글 7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

배우 고용해 만든 일본 성인물보다

일반인 몰카가 조회 수 10배 많아

성인사이트들 경품대회로 회원 늘리고

성매매ㆍ도박 등 불법광고로 수익

#2

몰카, 성인물 주요 장르로 소비

일반인까지 죄의식 없이 도촬

단추ㆍ넥타이ㆍ생수통ㆍ나사못…

도촬 장비 매년 새롭게 탄생

#3

30대 보험설계사, 의사 행세

성관계 촬영 연간 1억 벌기도
한국일보

몰래카메라 장비가 날로 혁신을 거듭하고, 도촬과 엿보기가 일상이 되고 있다. 죄의식 없는 관음의 문화는 불법 성인물 시장의 성장과 피해자 양산에 일익을 담당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신상순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에서 법무사로 일하는 정모(33)씨는 퇴근 후면 성인사이트 운영자로 변신했다. 그가 운영하던 성인사이트 꿀밤은 회원이 42만명이나 됐고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며 그에게 15억원의 수입을 안겼다. 정씨가 ‘밤의 사업’을 성공시킨 핵심 마케팅 수단은 몰래카메라(몰카) 촬영물이었다. 1위(200만원)부터 4위까지 총 500만원을 상금으로 내걸고 ‘꿀밤 콘텐츠 콘테스트’를 개최하자 회원들은 자신의 여자친구, 아내와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찍어 출품했다. 정씨는 음란영상을 올리고 관리하는 직원 5명을 두고 월 100만~300만원을 주었는데, 한 직원은 여성 몰래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시리즈를 30회 이상 웹사이트에 올렸다. 이런 몰카 영상을 보기 위해 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꿀밤 사이트에는 개설 1년 만에 480여 곳의 성매매 업체 광고가 붙었고 그 수익이 월 7,000만원에 달했다. 지난 1월 경찰에 잡힌 정씨는 “100억 정도를 벌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최근 한국인들이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외국 민박집에서 몰카를 발견했다는 보도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지만, 몰래 촬영과 엿보기 악습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10년 1,134건에서 2015년 7,623건으로 7배나 급증했고, 성폭력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3.6%에서 2015년 24.9%로 늘어났다. 2012~2016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성행위 영상 신고건수도 무려 1만8,809건. 모르는 새 찍힌 자신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놀란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호프집 화장실, 여행지 숙소에서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는 게 아닌지 신경이 곤두서는 현실이다. 온 나라를 관음에 탐닉하게 만드는 몰카 범죄는 발전하는 카메라 기술과 거대한 유통시장의 존재로 인하여 거침없이 성장 중이다.
한국일보

누구나 어디서나 촬영되는 세상

몰카 촬영에 대한 경계심이 무너지고 급속히 일반화한 것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부터지만, 신종 몰카 장비들은 그 범위를 무한히 확장시키고 있다. 매년 새롭게 탄생하는 신종 몰카는 가히 창조적이다. 2005년 볼펜 몰카가 출시된 이후 입고 걸치는 안경ㆍ모자ㆍ셔츠 단추ㆍ넥타이, 집 벽에 붙이는 나사못ㆍ유화 그림ㆍ전등, 테이블 위에 아무렇지 않게 놓아둘 수 있는 생수통ㆍ리모컨ㆍ마우스ㆍ휴대폰 거치대까지 기상천외한 몰카가 시판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파연구원으로부터 전파인증을 받은 변형 카메라는 총 163종. 매년 30~40개가 새롭게 목록에 오른다.

과거 수사ㆍ정보기관, 심부름업체 정도나 사용할 것이라고 믿었던 도촬 장비들이 이처럼 창조적 혁신을 거듭하며 몰카 촬영은 누구에게나 손쉬운 일이 되었고, 직장인, 민박집 주인, 식당 종업원 등 멀쩡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범죄에 가담한다. 엿보기 욕구를 참지 못해 혼자 몰래 촬영해 보는 것에서 시작해, 카카오톡이나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공유하고, 성인사이트들을 찾아다니며 볼 정도가 되면, 몰카 촬영물을 사고 파는 것으로 나아가기도 쉽다. 때로는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보복심리로, 때로는 순전히 공유하며 반응을 즐기는 재미를 위해 성관계 영상을 퍼뜨리기도 한다.

범죄라는 인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몰카 촬영물의 온라인 유통을 감시하는 디지털성범죄아웃의 하예나 대표는 “몰카를 찍어 올린 가해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장난이었다고 대답하며 죄책감이 아예 없다”며 “자신이 올린 몰카 촬영물에 대한 반응이 쏟아질 때 영웅이 된 듯한 느낌을 즐긴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대방의 내밀한 부분까지 내 맘껏 보고자 하는 남성 권력문화가 투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인물 장르로 소비되는 몰카

몰카를 보고 즐기는 소비층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 우리나라에서 몰래 촬영과 엿보기가 얼마나 흔한 일인지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일간베스트(일베)에는 명절 때면 ‘사촌 동생’이라는 게시물이 집중적으로 올라온다. 친인척들이 모였을 때 몰래 촬영한 10~20대 여성의 뒷모습, 특히 다리 부분을 부각해 찍은 사진들이다. 지난 설 연휴기간(1월 27~30일)에만 79건(삭제 글 포함)이 게시됐다. 이런 몰카 게시물은 최소 1만5,000명이 열람했고, 다운로드한 횟수도 평균 200회 이상이다.

수위 높은 몰카 동영상은 성인 포르노물과 큰 구분 없이 하나의 포르노 장르로 소비되고 있다. 하 대표는 “모든 성인사이트에 몰카 동영상이 유통된다. 최근 국산 동영상이라고 업로드된 건 다 몰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 업소에서 촬영된 영상도 일부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촬영ㆍ유포에 대한 동의는 없다는 점에서 몰카 범죄다. 남성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하고, 여성의 얼굴은 그대로 노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배우를 고용해 만든 포르노물보다 일반인을 몰래 촬영한 영상이 더 잘 팔린다. K 성인사이트에는 무려 4,436건의 몰카 성행위 동영상이 올라있고, 매일 4개 꼴로 새로운 몰카 영상이 업로드된다. 영상별 조회수는 최소 8,000여회, 최대 7만5,000여회다. 이 사이트의 일본 상업 포르노 영상(조회수 200~8,000여회)보다 10배쯤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전체 숫자는 상업적 포르노물이 훨씬 많지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몰카 영상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을 촬영한 몰카가 엿보기 본능을 더욱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회원 수를 불리려는 성인사이트들이 몰카 마케팅을 동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원조는 한 때 100만 명 회원을 보유하며 각종 성범죄의 온상으로 꼽히던 소라넷이다. 이후 꿀밤이 몰카 컨테스트를 개최하고 Y 성인사이트가 5,000여건의 여성 사진이 게시된 몰카 게시판을 운영하는 등 숱한 소라넷의 아류 사이트들이 몰카 마케팅으로 세를 불렸다.
한국일보

수요ㆍ공급ㆍ기술이 함께 만든 대한민국의 관음 시장. 관음의 나라에서 몰카는 없어질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요ㆍ공급ㆍ기술이 만든 관음의 시장

성인사이트에서 몰카로 확보한 회원은 곧 돈이다. 성인물을 직거래하는 웹하드 운영자에겐 음란물을 판매한 대가가 주 수익원이지만 성인사이트들은 회원들에게 몰카를 포함한 대부분의 게시물을 공짜로 보게 하는 대신 불법광고로 돈을 번다.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음란물을 팔아 버는 수익도 있지만 광고수익이 더 크다. 경찰에 단속된 성인사이트들은 성매매, 도박, 약물 등 불법 광고들을 통해 월 300만~7,000만원씩 벌어들였다. 2015년 붙잡힌 윤모(39ㆍ온라인게임업체 대표)씨의 성인사이트는 46만 건의 음란물을 유통시키며 3개월 동안 광고 판매로 6,800만원을 벌었고, 주간베스트야동이라는 사이트는 30만 건을 올려 8,000만원의 불법 광고수입을 올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5년 상반기 인터넷 불법ㆍ유해정보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해사이트 접속순위 1~10위인 성인사이트들은 월간 접속자 수가 PC에서 10만~67만명, 모바일로 43만~82만명에 달하고 월간 페이지뷰가 최고 4,600만뷰가 될 정도니 실제로 엄청난 광고시장이다.

그런 만큼 성인사이트들은 몰카 수집에 적극적이다. 상금을 내걸거나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몰카 촬영을 부추긴다. ‘몰카 대부’라고 불리는 보험설계사 정모(35)씨는 2013년 6월부터 경찰에 검거된 2016년 말까지 몰카 촬영물을 팔아 연 1억원 이상을 챙겼다. 그는 길거리 등에서 여성 신체를 몰래 찍는 한편, 유명 병원 의사 행세를 하며 30~40명의 여성들을 속여 성관계 장면을 촬영해 꿀밤 등 성인사이트에 팔았다. 그 대가로 그는 비트코인으로 매달 1,000만원 안팎을 받았다. 121만명의 회원으로 국내 최대 성인사이트였던 AVSNOOP은 스마트폰 화면에 가짜 뉴스를 띄워놓고 화면을 클릭하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이 되는 몰카앱을 직접 제작ㆍ배포했다. 이 앱을 이용해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이들이 확인된 숫자만 32명이었다. 폐쇄 전까지 이 사이트가 벌어들인 수익은 17억원에 달했다. 과도한 엿보기 문화가 불법 성인사이트를 낳고, 성인사이트들이 다시 몰카 촬영을 독려하는 완전한 생산-유통-소비의 고리가 형성된다.

개인 간 거래 시장도 존재한다. 2015년 워터파크와 수영장 여자 샤워실에서 200여명의 여성 알몸을 도촬한 사건이 그런 사례다. 최모(29ㆍ여)씨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강모(35)씨의 요구에 스마트폰 형태의 몰카를 들고 샤워실 내부에서 몰카를 찍었고, 영상 1개에 30만~60만원씩 총 200만원을 받았다. 강씨는 이를 다시 30대 회사원에게 120만원에 팔았고, SNS에도 유포했다.

이 엄청난 관음의 시장 안에서 몰카 촬영과 유포, 소비가 죄가 된다는 인식은 희박하기만 하다. 상업적 포르노물보다 일반인 몰카 영상이 덜 음란하고 중대한 범죄도 아니라는 통념이 퍼져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것은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제 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불법 행위다. 영리를 목적으로 유포했을 때는 7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이 더 강하다. 성인 포르노물 유통은 정보통신망법(제 42조 7항 불법정보의 유통금지)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와 비교하면 몰카 범죄를 더 엄히 처벌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포르노물이 자발적 계약에 따라 배우들이 노출되는 것과 달리 몰카는 당사자의 동의는커녕 인지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체노출과 인격이 침해되는, 피해자에 미치는 충격이 심각한 범죄다.
한국일보

몰카를 찍어 유통하는 사람들과, 몰카를 찾아서 시청하는 사람들. 누구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처벌되지 않는 범죄자들

명백한 불법인데도 몰카 영상이 버젓이 유포되고 유통 사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사이트들이 성인물 유통이 합법인 네덜란드나 미국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경찰 단속을 피하기 때문이다. 소라넷이나 AVSNOOP도 이런 식으로 수사를 지연시켜 오랜 기간에 걸친 국가간 공조를 통해서야 겨우 사이트가 폐쇄됐다.

그러나 소라넷을 만든 운영자는 아직 검거되지 않았고, 아류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 넘쳤다. 검거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몰카 시장은 커지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에 서버가 있는 경우 국제 공조 수사도 쉽지 않다”며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의 경우 국제적으로 경각심이 높아 협조가 잘 되지만, 그 밖의 몰카 영상에 대해서는 수사가 상당히 지연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방송심의위원회가 불법 정보 차단 안내(warning.or.kr)를 띄워 음란물 사이트를 차단하기는 하지만, 성인사이트들의 돌려막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사이트 접속이 차단되면 운영자는 즉시 새 이름과 주소로 서비스를 재개하고,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새 주소를 회원들에게 알린다. 이 혐의만으로 미국 업체인 트위터 계정을 수사하거나 폐쇄할 수도 없어 경찰과 방심위는 이런 메뚜기 전략에 속수무책이다. 이런 방식의 운영을 처음 시작한 것 역시 소라넷이다. 2012년 소라넷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피겨선수 김연아(약 14만명), 소설가 이외수(약 12만명)에 이어 3번째(약 10만)로 많았다.

몰카 촬영물이 유통되는 또 다른 경로인 웹하드는 아예 단속 무풍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 대표는 “국내 웹하드는 특히나 당국의 몰카 영상 단속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웹하드에서도 포르노물과 몰카 촬영물을 수천 건씩 유통시키지만, 방심위는 접수된 영상물만 심의하기에도 벅찬데다, 음란물 유통을 차단하면 곧 재편집해 새로운 해시(영상에 부여되는 고유 아이디)로 유통되는 일이 똑같이 일어난다. 음란 영상 제재 권한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음란물 유통을 단속하고는 있지만, 몰카 촬영물은 불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애매하다”고 말했다. 노출된 신체를 찍은 몰카 범죄 재판에서 신체 일부를 확대해 찍은 경우는 유죄, 전신 촬영은 무죄로 판단하는 등 판결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몰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몰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성인사이트들에 대해 사이트 폐쇄나 범죄수익 환수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운영자가 ’더는 안 되겠다’고 위협을 느낄 정도로 상당한 징벌적 과징금, 높은 징역형 등 처벌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급자 단속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 아닌 한 이런 영상을 소지하거나 보는 사람은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사회 전반의 무분별한 엿보기 욕망이 결국 몰카 피해자를 양산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몰카 범죄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동참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몰카를 찍은 너는 ‘관음 성향의 범죄자’, 나는 관련 없는 ‘깨끗한 사람’이라며 몰카 촬영자만 비난해서는 몰카 범죄를 근절할 수 없습니다. 몰카 촬영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몰카가 비인간적, 비인격적 문화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없애려고 노력할 때야말로 몰카 없는 세상에 한발자국 다가갈 수 있겠죠.”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