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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대통령 간담회 앞두고 '선물 보따리' 내놓는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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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맞추기' 나설수록 쌓이는 ‘정책 상충(相衝) 스트레스’

삼성디스플레이는 26일 1·2차 협력사의 물품 대금 결제가 현금으로 이뤄지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 순환을 빠르게 해 협력사들의 재무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도 비슷한 협력사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약속어음 제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날 CJ도 파견직 3008명을 직접 고용하고, 무기 계약직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했다. 호칭을 ‘서비스 전문직’으로 바꾸고, 의료비 혜택도 준다.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발을 맞춘 것이다.

대기업들이 정규직 확대, 협력사 상생 등 새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는 경영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 기업이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일자리·투자를 늘리는 것과 비슷한 한국판 ‘트럼프 효과’다.

우선 주요 대기업은 협력사 처우 개선, 금융자금 지원 등의 상생 모델 방안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SK는 1600억원 규모의 협력사 지원 펀드를 신설하고, 무상 교육 및 복리 후생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협력사들이 부담할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선순환형 동반성장 5대 전략’을 마련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도 물꼬가 트이고 있다. CJ그룹에 앞서 두산과 두산인프라코어는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계약직과 외부 파견직 근로자 45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중앙일보

대통령 간담회 앞두고 상생협력 방안 쏟아내는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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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선물 꾸러미’를 한꺼번에 내놓은 것은 27·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 때문이다. 새 정부 대통령과 첫 간담회인 만큼 노동친화 정책에 맞춘 전략 변화 방안을 선보여 눈도장을 찍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투자·고용 계획을 취합해 발표했는데, 올해는 각 기업이 개별적으로 상생협력·동반성장 관련 계획을 내놓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귀띔했다.

최근 정부의 정책 추진 속도가 빨라진 것도 한몫했다. 재벌 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는 최근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율 인상 등 대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변화를 최대한 기다리겠지만 한국 경제에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공식적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새로운 정책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양립하기 힘든 과제들이 한꺼번에 던져지면서 ‘정책 상충(相衝) 스트레스’가 크다.

모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인 A씨는 내년도 채용안을 짜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정부 방침대로 정규직을 늘리면 매년 노조와의 임금 협상으로 꾸준히 임금이 오른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저연차 사원들의 기본급과 직무·근속수당도 올려줘야 한다. 모두 인건비를 올리는 요인이다. A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이자니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 정책에 배치된다”며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상은 동반성장·사회공헌 등에 쓰려고 했던 재원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는 인재들이 안정적인 공공부문에 몰리게 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과 서로 충돌하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정부가 당근 없이 채찍만 든다면 상생협력은 지속되기 힘들다”며 “대기업을 활용해 경제·복지정책을 실현하자는 게 정부의 정책 취지인데,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하는 지원책도 함께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후폭풍으로 경방이 주력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전남방직이 섬유공장 6곳 중 3곳을 폐쇄하는 등 정책 상충에 따른 부작용도 현실화하고 있다. 재계의 '보여주기식'도 안 되지만, 정부가 기업의 희생만을 강요하며 밀어붙이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들에 각종 숙제를 주다 보면 시장에 ‘정부가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며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이 단기간에 쏟아지는 것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해용·김영주·김도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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