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기자의 눈] 서울의 미래 보여준 청년의회의 열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스1

(서울=뉴스1) 정혜아 기자 = "서울의 청년들은 '개복치'와 같다. 뭐만 하면 탈락하고 거절당하는 것이 정말 자주 돌연사하는 개복치와 닮았다."

강지우 청년의원이 2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서울청년의회 시정질의에 나서서 한 말이다. 그의 말은 아프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표현하는 방식은 재기발랄했다.

강 의원은 '부산에서 서울로 온 김청년씨의 개복치 게임'을 진행했다. 개복치 게임은 일본 게임사 셀렉트버튼이 개발했다. 게임에서 개복치는 오징어를 너무 먹어 소화를 못 시키는 등 황당한 이유로 갑자기 죽는다. 김청년의 처지도 이 게임의 개복치와 비슷하다. 행복주택, 서울시 자치구 맞춤형 청년주택, 보증금 지원정책 등에 지원했다. 그러나 계속 탈락하고 거절당했다. 강 의원은 결국 서울을 '주거로 죽어가는 도시'로 묘사하면서 끝을 맺었다.

서울청년의회는 청년 주도의 청년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3년부터 운영하는 제도로 만 19∼33세 137명의 청년의원들로 구성됐다. 서울청년의회는 당초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우선 재미있었다. 3시간나 되는 긴 시간이 금새 지나갈 정도였다. 청년 137명은 저마다의 시각으로 참신하게 시정을 비판하고 애정어린 제안을 아끼지 않았다.

이규리 청년의원은 유치원 때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사진을 보여줬다. 죽을 때까지 부채춤을 출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며 '청년들의 빚' 문제를 제기했다. 김훈배 청년의원은 자신을 '버스덕후, 버스돌아이'로 소개했다. 평소에 타고 다니는 버스의 배차시간표를 종이에 적은 후 어깨에 메고 나타나 서울의 버스정책 개선안을 제시했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모방해 시의 일자리정책을 비판한 나현우 청년의원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의 시정질의를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선 놀라운 경험이었다. 시정질의는 하품을 참고 졸린 눈을 비벼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동료의원들의 질문이 지겨운 듯 본회의장 1층 로비는 회의장을 빠져나온 의원들과 관계자들로 늘 붐비곤 한다.

청년의원들의 시정질의는 내용도 훌륭했다. 한 서울시 국장은 시의원들보다 청년의원들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날이 서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시 국장은 청년의원의 질문은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 귀 기울일 만 하다고 평했다. 실제로 2015년과 지난해 청년의원들이 제안한 '희망두배 청년통장'과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은 시정에 반영돼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청년의원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듯 했다. 이날 박 시장은 자신의 마음을 '밀당도 못하는 짝사랑'이라고 묘사했다. 청년의원들에게 서울시의회 점령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회도 점령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즈려밟고 가라고, 자신을 딛고 오르라고 말했다. 서울시를 비판·견제하는 서울시의회에 들어와 역할을 제대로 하며 성장하고 더 큰 물로 이동하라는 얘기로 들렸다.

유럽에서는 20대의 지방의회 의원들을 보는 것이 힘들지 않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10대 안나 뤼어만이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적도 있다. 연방하원의원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원이다.

현재 서울시의회에서 가장 젊은 의원은 1978년생이다. 올해 한국나이로 40대에 들어섰다. 젊은 피가 수급되지 않아서 지금 서울시의회 모습이 이런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청년들이 활약하는 서울시의회를 그려본다.

희망두배 청년통장과 청년수당 등을 통해 더 나은 청년살이를 이뤄낸 청년들이 서울시의회, 더 나아가 국회로 진출해 또 다른 청년의 삶을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 지방선거가 일년도 채 남지 않았다. 청춘의 재기발랄함과 참신함, 날 섬이 담긴 시의회가 보고 싶다. '개복치'와 같은 청년들이 서울시의회를 점령해 다른 개복치들의 돌연사를 막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wit4@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