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고통 분담하면 ‘최저임금 7530’ 연착륙 가능
삼각김밥, 샌드위치, 도시락, 우유….
편의점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는 이지윤(23·가명)씨의 주식은 ‘폐기’다. ‘폐기’는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음식을 말한다. 편의점에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폐기’ 등록을 마친 음식은 알바에게 보통 ‘2차 폐기’된다.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대신 알바들이 먹거나 챙겨간다. 경기도의 한 편의점에서 하루 6시간씩 주 2회 알바하는 지윤씨는 이렇게 챙긴 폐기 음식으로 일주일에 나흘을 버틴다. “식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굳이 편의점 알바를 선택한 이유도 실은 ‘폐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달성의 수순
편의점 사장 김경수(가명)씨와 아르바이트 노동자 이지윤(가명)씨가 음료수 냉장고 뒤편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사장님’과 ‘알바’ 사이의 싸움이 아니다. 김진수 기자 |
시급 6470원을 받는 지윤씨의 한 달 벌이는 30만원 남짓. 자취방 월세로 15만원을 내면, 15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깡마른 지윤씨는 “원래 잘 안 먹어서” 괜찮단다. 주말에는 카레, 두부 등으로 배를 채운다. 알바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취방에서 혼자 공부한다. 국제무역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학을 1년간 휴학했다.
“내년은 5만~6만원 더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지난 7월18일 오후, 편의점 계산대에 서서 쉴 새 없이 ‘삑삑’ 바코드를 찍어대다 잠시 한숨을 돌린 지윤씨가 말했다. 7월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시급 7530원으로 결정했다. ‘나는 얼마 받을 수 있을까?’ 지윤씨는 속으로 계산해봤다. 알바하는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16.4%라는 대폭 인상률에 지윤씨는 모처럼 배불렀다. “엄마가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는데 최저시급에 맞춰 월급을 받으시거든요. 엄마 월급도 오르지 않을까요?” 허리디스크와 손목 통증으로 고생하는 지윤씨 엄마는 월 120만원 남짓 번다.
2018년 최저시급이 753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최저시급 6470원보다 1060원 오른 액수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된 뒤 최고의 인상액(1060원)이다. 인상률(16.4%)로도 역대 네 번째다. 최근 5년 새 최저임금 인상률은 6~8%였다(아래 그림1). 역대 정부와 비교해서도 16.4%는 큰 폭이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연평균 인상률은 7.4%, 가장 높았던 노무현 정부 때도 연평균 10.6%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된 수순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20년까지, 홍준표 자유한국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22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분위기를 의식해인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양쪽은 예년과 달리 파격적인 최종안을 제시했다. 사용자위원은 12.8% 인상한 7300원을, 노동자위원은 16.4% 인상한 7530원을 내놨고 공익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노동자위원 쪽에 표를 던졌다. 최저시급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3770원(주 40시간 근무 기준·주휴수당 등 포함)이 된다. 올랐다고 하지만, 남성노동자 1인 가구 표준생계비 216만원(한국노총 추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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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연합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반발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는 길”(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이라는 강도 높은 비판과 “속도와 방법을 신중하게 조절해나가야 한다”(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주문이 이어졌다. 소상공인연합회는 7월20일 ‘최저임금 인상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특히 조·중·동 등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연일 ‘최저임금 인상 때리기’에 앞장섰다. <조선일보>는 ‘최저임금 최대인상 경제실험 시작됐다’(7월17일치), ‘최저임금도 못 주는 동네시급’(7월18일치) 등 연속 이틀 최저임금 문제를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편의점·치킨업주 “차라리 내가 다른 가게 알바 뛰는 게 낫지”’(<조선일보> 7월17일치 4면), ‘“알바 월급 167만원, 사장은 186만원” 가게 접겠다는 업주들’(<동아일보> 7월17일치 3면), ‘국민 세금으로 메꾸는 최저임금 7530원’(<중앙일보> 7월17일치 1면). 알바·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영세중소기업 사이를 ‘편가르기’ 하는 한편으로, ‘세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밑바닥 정서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지윤씨 같은 알바, 지윤씨 어머니 같은 저임금 노동자는 한편의 ‘을’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전체 노동자의 23.6%인 463만 명에 이른다. 자영업자나 영세중소기업은 또 다른 한편의 ‘을’이다. 600만 자영업자 가운데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는 160만 명 남짓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보다 상가 임대료,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야 하는 납입금 등이 자영업자에게는 더 무거운 짐이다.
그런데 ‘갑’인 건물주나 프랜차이즈 문제보다 ‘을’의 문제인 최저임금 인상에 왜 자영업자들이 더 크게 분노하는 것처럼 비칠까?
“얼마나 쉬워요. 약한 사람한테 화내기 쉽잖아요.” 지윤씨가 일하는 편의점 사장인 김경수(38·가명)씨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 답했다. 그는 “건물주나 프랜차이즈 본사 같은 곳을 건드렸다가 재계약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누가 쉽게 목소리를 내겠느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편의점 업계를 ‘늪’이라고 표현했다. “고만고만한 퇴직금 4천만원 들고서 너도나도 뛰어들 수 있는” 업종이란 뜻이다. 7월20일 통계청이 발표한 프랜차이즈 통계를 보면, 편의점 가맹점은 3만 개를 돌파했다. 가맹점 수가 가장 많은 업종이다. 김씨가 운영하는 편의점 반경 150m 안에 비슷한 편의점 10곳이 있다. 과다경쟁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편의점은 가맹점당 영업이익이 가장 적은 연간 1860만원으로 집계됐다.
정부, 최저임금 인상분의 9%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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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편의점에서 얻는 수익도 자신의 인건비 수준이다. 그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편의점을 지킨다. 저녁과 야간 근무는 아르바이트 8명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토요일 밤 근무는 김씨 차지다. 이렇게 일해서 한 달에 챙겨가는 돈은 200만원이 약간 넘는다. “바로 근처에 다른 편의점이 들어서 매출 30%가 날아갔어요. 사실 본사 입장에선 손해 보는 게 없거든요. 매출이 커질수록 본사가 로열티를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예요.” 본사에서 넣어주는 A제품 원가가 500원인데 주변 대형마트 소매가가 400원인 것을 발견했을 때, 담뱃값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라도 가맹점이 챙기는 몫은 늘어나지 않는 것을 깨달았을 때마다 김씨의 억울한 마음은 커진다.
최저시급이 1060원 오르면, 내년 김씨의 인건비 지출은 80만원 남짓 늘어날 전망이다. “솔직히 막막해요. 정부가 3조원 지원하겠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거든요.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민주화의 첫 단계라는 데는 동의해요. 임금이 늘어야 내수가 살아나고 골목상권도 좋아지겠죠. 저 같은 자영업자는 제 살 깎아서 최저시급 더 많이 주는데 재벌은 뭘 내놓죠?”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현금 3조원을 직접 지원하겠다는 대책(그림3 참조)을 내놨다. 최근 5년간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 7.4%를 초과하는 인상분 9%포인트에 대해서는 일자리안정기금 등을 만들어 정부가 인건비를 보태주고, 카드수수료 인하·사회보험료 지원 등에도 ‘1조원+α’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재원이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한 반발 심리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가 어렵고 자영업 관련 대책을 쏟아내더라도, 지금 사람들에게는 ‘16.4%’란 숫자만 보인다. 한꺼번에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을 보니 자신은 ‘역소외’됐다는 복잡한 대중심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경제학 박사)는 “이제부터는 자영업자 지원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인건비 지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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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영업자 규모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0%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0%대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그림2),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높아지는지 아닌지를 놓고도 논쟁이 벌어진다. 이상헌 정책특보는 “대규모 자영업이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국제 비교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이 “한국 고유의 정책 실험”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려면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김경수씨는 “편의점 본사의 이익은 따지고 보면 가맹점에서 나오는데, 본사가 인건비 인상분의 절반 정도는 지원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편의점 업계 1위를 다투는 GS25(GS리테일)와 CU(BGF리테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각각 2735억원과 1846억원이다. 7월18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분에 따라 하도급 단가나 가맹금 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법안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을’의 고통을 ‘또 다른 을’인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에 떠넘길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부 등의 ‘갑’이 고통을 분담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취지다.
인천에서 프랜차이즈 치킨·호프집을 운영하는 임창훈(46) 사장은 최근 가게를 부동산에 내놨다. 10년 동안 장사해온 곳이지만 미련은 없다. “이 터널을 어떻게 빨리 지나갈까” 하는 생각뿐이다. 건물주와의 싸움에 지쳤기 때문이다. 임씨는 10년 전 4억5천만원을 투자해 상가건물 1층에 가게를 냈다. 당시 권리금은 1억5천만원. 월세 880만원을 내고 닭갈비 프랜차이즈를 운영했다. 5년 넘게 장사했는데 프랜차이즈 본사가 ‘갑의 횡포’를 부렸다. 사소한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더니, 임씨 가게 뒤쪽 건물에 똑같은 간판을 매단 닭갈비집을 열었다. 본사 창업 멤버의 친·인척이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프랜차이즈의 ‘갑질’이 잊힐 무렵, 건물주의 ‘갑질’이 시작됐다. 2015년 여름, 건물주와 계약 갱신을 두고 소송을 벌였다. 다행히 2심에서 승소했지만, 마음은 이미 건물에서 떠났다. 제법 돈을 버는 것 같지만, 각종 비용을 제하면 임씨가 손에 쥐는 돈은 월 500만원 남짓이다. 임씨가 고용한 직원들의 최저시급은 현재 7천원. 내년에는 8천원 이상으로 올려야 하니, 직원 수를 줄이고 임씨와 아내가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방법 말고는 버틸 뾰족수가 없다.
“사실 자영업자 처지에선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 중 절반을 지원해준다는 얘기가 귀에 안 들어와요. 그래도 지원책만 잘 마련하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건물주는 내 재산을 통째로 가져가는 거잖아요. 월세 인상률 5%만 해도 살인적인데 인상률 상한선도 낮추고, 상가임대차법 적용 대상이 되는 환산보증금도 상향 조정돼야죠.” 정부는 임씨 같은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가임대차 보증금과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현행 9%에서 낮추고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할 방침이다.
자영업자 부담에 ‘속도조절론’도
인천에서 프랜차이즈 치킨·호프집을 운영하는 임창훈 사장(왼쪽)이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임 사장은 건물주의 횡포에 시달리다 최근 가게를 팔기로 결정했다. 박승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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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을’ 대 ‘을’의 싸움처럼 변질돼가고 있지만, 이번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프랜차이즈 관련 후속 대책은 ‘노동시장 개선’과 ‘산업 합리화’ 혹은 ‘불평등 해소’와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첫 번째로 내던진 야심찬 승부수다. 홍장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가계소득을 늘려서 내수를 진작하고, 결과적으로 소득분배와 성장으로 이어가는 소득 주도 성장의 첫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희망근로사업에 2조5천억원을 투자했다. 노동시장이 받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게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의 1%를 사회보험료 지원에 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을 기대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200만 노동자, 사회보험에 미가입된 400만 노동자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한편, 일자리가 탄탄해지면 영세자영업자들이 노동시장 안으로 옮겨갈 동력이 생겨 산업구조가 합리화될 것이란 기대다.
서울의 낮 기온이 34.9℃까지 치솟은 7월20일, 서울 망원시장의 닭강정 가게 안은 찜통 같았다. 뜨거운 기름 근처에 선 황경조(55) 사장도 연신 땀을 훔쳤다. 6년 전에 가게를 차린 그는 스스로 “자영업 실패 확률 90%에서 벗어난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물론 그도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쳤다. 여러 차례 실패 끝에 지인에게 3천만원을 빌려서 연 가게는 주말이면 줄 서야 하는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그도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소식에 부담감이 ‘턱’ 하고 마음에 얹혔다. 뜨거운 기름 앞에서 종일 서서 일하는 직원 6명에겐 현재 시급 7500원을 쳐준다. 전부 4대 보험에 가입시키고 야간·휴일수당을 챙겨주니 인건비 비중이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한다. “정부가 1년 동안 지원해준다고 해도 장사 1년만 하고 말 게 아니니까 부담스럽죠.”
이 때문에 일부에선 ‘속도 조절론’을 내놓는다.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한꺼번에 16.4%는 과하다는 논리다.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를 연구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학계에서는 1990년대 이후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고용효과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대세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빨라서 일자리가 줄어들지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내년부터 구체적인 효과를 보면서 완급 조절을 하면 될 문제다”라고 말했다.
‘가지 않은 길’을 고민할 때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소득 주도 성장은 우리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다. 그 길을 가는 데 필요한 경제민주화 대책이나 증세 논의 등은 이제 막 시작됐다. 겨우 첫발을 떼놓고 ‘폐기’를 말할 수야 없지 않은가. 하물며 이것이 한국 사회가 고민해왔던 ‘모든 것을 바꿔놓을 길’이라면.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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