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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어제(23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직접 빈소를 찾아 전임자인 윤병세 전 장관과 비교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강경화 장관은 어제 저녁 8시쯤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를 방문했습니다.
강 장관은 김군자 할머니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유족들을 위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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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관은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지난달 2일) 나눔의 집에 가서 봤을 때 김군자 할머니가 휠체어에 타고 계셨다. 건강해 보였는데 또 한 분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강 장관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분 중 또 한 분이 흡족한 답을 못 얻고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강 장관은 "외교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내용이나 협상 경과를 좀 더 꼼꼼히 검토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 장관이 직접 빈소를 찾은 데 비해 전임자였던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의 과거 행보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윤병세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를 추진했을 당시 외교부장관으로 합의의 실질적인 총 책임자입니다.
윤 전 장관은 외교부장관으로 일하던 지난 4월 4일 위안부 피해자 고 이순덕 할머니가 별세하자 빈소를 직접 찾지는 않고 이른바 '대리 조문'을 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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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장관은 당시 서울의 한 병원에 마련된 이순덕 할머니의 빈소에 외교부 직원을 통해 조의금을 전달했는데 방명록에 이름을 적힌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른바 '대리 조문'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윤 전 장관 측은 당시 "전례와 동일한 조문 형식을 취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윤 전 장관 측은 "조의금을 전달하는 사람이 전달 의뢰자의 이름도 조문록에 함께 기록하는 관행에 따라 한 것이다. 조문을 간 것처럼 보이게 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교 참사'의 주역인 윤 전 장관이 대리 조문을 통해 또 한 번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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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김군자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3녀 중 장녀로 태어난 뒤 17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김군자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위안부 생활에 몇 번이나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김군자 할머지는 탈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가혹한 구타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군자 할머니는 힘든 생활에도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 지원금 등을 모아 "저처럼 부모 없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써달라"며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집에 1000만원, 퇴촌 성당에 1억 5000만원 등을 각각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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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자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의 치유금은 받지 않겠다며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미디어몽구 트위터, 연합뉴스)
[정윤식 기자 jy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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