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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4일 시티폰의 추억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셨던 분이라면 ‘시티폰’을 쉽게 기억하실 겁니다. 주인공 나정이 아버지 성동일이 시티폰 주식에 투자했다 쫄딱 망해버리고 말았죠. 무려 1억원 가까이 날렸습니다.
시티폰은 ‘발신 전용’ 전화였습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기지국으로부터 반경 200m 내에서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공중전화는 삐삐 호출을 받은 사람들로 붐비기 일쑤였습니다. 매번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이들에게 시티폰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삐삐 호출이 오면 공중전화를 찾아가는 것 보다 가방 속에서 시티폰을 꺼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죠.
20년 전 이날 실린 시티폰 광고는 여름 휴가 기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및 유명 휴양지로 서비스 지역을 늘린다고 홍보합니다. 30대의 개그맨 이경규씨 모습도 엿보입니다.
그러나 시티폰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발신 성공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성동일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극찬한 시티폰은 1997년 등장해 3년 만에 시장에서 퇴출됐습니다.
■1987년 7월 24일 우산도 패션시대
이미 30년 전 우산은 일종의 ‘패션’이었습니다. 어두운 색깔의 무늬없는 원단이 주를 이루며 단순히 ‘비를 피하는 도구’ 쯤에 불과했던 우산이 개성에 따라 선택하는 ‘패션포인트’로 탈바꿈했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당시 유행하는 우산 패션은 캐주얼과 하이패션(정장) 우산으로 구분됐습니다. 의상과 톤(tone)을 같이 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10·20대들이 선호하는 캐주얼 우산은 투박한 멋을 강조했습니다. 작은 꽃무늬가 새겨진 파스텔톤 또는 2단·3단 접을 수 있는 미니 우산을 찾는 층도 꽤 있었습니다. 또 귀족풍의 주름 장식(프릴)을 단 ‘로맨틱 우산’, 우산 손잡이와 꼭지에 끈을 연결해 어깨에 메고다닐 수 있는 ‘멜빵 우산’도 있었습니다.
1987년 여름에는 꽃무늬 자수를 놓은 수양산, 레이스양산, 실루엣양산이 유행했습니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대비한 우산 겸용 양산도 잘 팔렸습니다. 역시 유행은 돌고 도나봅니다. 오늘 신문에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네요.
■1967년 7월 24일 덜미 잡힌 우표 조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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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우표 위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는 기사입니다. 당시 우정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위조를 청탁한 이는 다름아닌 우체국 직원이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우표를 위조해 서울 종로의 한 다방 등에서 팔아넘겼습니다. ‘코미션’(커미션)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주범은 전 우체국 창구직원에게 우표를 팔아주면 일정한 코미션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전직 우체국 직원은 현직 창구매표원에게 코미션을 주는 방식으로 위조 우표를 팔았습니다. 경찰이 압수한 것만도 100원권 820장, 80원권 600장, 50원권 1000장 등 모두 6097장. 판매금은 2800만원에 달했습니다.
이들의 범행은 ‘매의 눈’인 한 우체국 직원 덕분에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 직원은 외국우편물 요금을 조사하던 중 미국행 우편물에 붙은 100원권 우표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우표를 조폐공사에 감정의뢰한 결과 위조로 밝혀지면서 본격적인 경찰 수사도 시작됐습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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