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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스타트업에 둥지 튼 대기업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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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서 제2의 인생 4人의 솔직한 토크

매일경제

왼쪽부터 오형내 CTO, 이준호 공동대표, 박종백 사원, 조세열 CFO.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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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들은 국내 가장 큰 정보기술(IT)기업, 외국계 증권사, 글로벌 컨설팅회사 임원들이었다. 이들에게 정장은 일상이었다. 7월 강남 스타일쉐어 사무실에 모인 이들은 자유로웠다. 오형내 전 다음 개발팀장은 반바지 차림으로 다른 패널들을 맞았다. 이준호 전 네이버 이사는 서류가방이 아닌 캐릭터로 장식된 파우치를 들었다. 박종백 전 밀워드브라운 전무는 본명 대신 자신을 JB로 소개했다. 조세열 전 맥쿼리증권 전무는 웃으며 자신을 '세열님'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선망의 대상인 대기업 임원 자리를 버리고 스타트업에 취업한 이들과 시니어로서 직접 체험한 창업 생태계 현실에 대해 기탄없이 의견을 나눴다.

―직접 자기소개를 해달라.

▷이준호 센스톤(보안) 공동대표(51)=다음 최고정보책임자(CIO)를 거쳐 네이버 보안 부문 이사로 근무했다. 임원 생활만 10년이 넘은 것 같다.

▷조세열 8퍼센트(핀테크) 최고재무책임자(CFO·51)=총업력은 23년이다. 삼성물산에 입사해 7년 근무한 후 맥쿼리증권 국내 1기로 옮겼다. 이후 그곳에서 14년간 근무하며 전무까지 달았다.

▷박종백 오픈서베이(설문조사 플랫폼) 사원(53)=다들 지금도 중역이신데 나는 현재 사원이다(웃음). 외국계 미디어리서치 밀워드브라운에서 커리어를 전무까지 쌓았다. 이후엔 인하대 통계학과에서 교수를 하며 잠시 교단에도 섰다.

▷오형내 스타일쉐어(패션콘텐츠) 최고기술책임자(CTO·44)=다음에서 동영상과 지도 서비스를 개발하며 14년간 근무한 후 퇴사했다.

―스타트업 합류 계기는.

▷조세열 CFO=우리은행과 맥쿼리가 만든 조인트벤처에 파견돼 대표를 맡았는데 그때 막내 직원이 지금의 이효진 8퍼센트 대표다. 이 대표가 창업을 고민할 때 사석에서 만나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는데 너무 재밌어 보였다. 그래서 먼저 열심히 할 테니 나도 좀 끼워 달라고 부탁했다. 대표님이 흔쾌히 뽑아줘서 너무 감사하다.

▷박종백 사원=대기업과 스타트업 두 곳에서 동시에 이직 제의를 받았다. 대기업은 그동안 해온 일을 또 우려먹는 데 그칠 것 같았다. 새롭게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스타트업을 택했다.

▷오형내 CTO=전 회사 대표인 다음 창업자 이택경 씨가 자신이 투자한 곳이라며 소개해줬다. 대표 나이가 20대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스타트업 업계에 와서 느낀 점은?

▷이준호 공동대표=스타트업에 와서 놀란 점은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벤처붐 때처럼 옥탑방이나 반지하에서 창업하고 배 곯는 시대가 아니다. 창업지원센터나 대기업 지원 오피스가 많다. 센스톤의 경우 한화그룹 지원 프로그램에 속해 있다. 63빌딩 내 공유 오피스에 무료로 입주해 있는데, 시설이 쾌적하다.

▷오형내 CTO=사실 처음 겁먹었던 것보다 임금 차이도 크지 않았다. 투자가 활성화돼 있어서 재능이 있는 능력자들은 적합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문제점은?

▷이준호 공동대표=현행 스타트업계 문제는 돈보다는 경험이다. 나도 그랬지만 청년들에게 돈만 투자하면 다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경험을 투자해줘야 한다. 전문가가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경험이 부족하고 어디 물어볼 곳도 없어 주저앉는 곳이 많다. 내 경우 네이버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가 왔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공유 오피스 내 다른 스타트업에서 종종 보안과 관련된 조언을 구하러 온다. 아주 단순한 기술 문제여서 바로 해결해주니 몇 달을 애먹고 있었다며 아주 고마워하더라.

▷박종백 사원=우리 회사는 모바일 리서치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친구들이 일한다. 문제는 이 양질로 뽑아낸 데이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경험 많은 시니어들이 합류해서 같이 고민한다면 훨씬 더 경쟁력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나 혼자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시켜줄 더 많은 경험자가 필요하다.

―시니어들이 멘토가 돼주자는 뜻인가.

▷이준호 공동대표=아니다. 스스로 멘토라고 생각하면 꼰대가 된다. 아들뻘, 딸뻘이라는 생각을 지우고 동료로 대하고 의견을 나눌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조세열 CFO=실제로 젊은 친구들과 일하면 가르쳐주는 것보다 배우는 게 많다.

▷오형내 CTO=역설적인데 20대 대표에게 노후 대책을 배웠다. 대기업 일원일 때는 주어진 일 말고는 몰라서 은퇴 후가 막막했다. 하지만 신생 조직에 와 보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운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젠 내 기술을 활용해 은퇴 후 작은 사무실이라도 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겨 마음이 든든해졌다.

―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게 어렵지 않나?

▷박종백 사원=직전 회사에선 지금 동료 나이뻘 되는 사원들이 복도에서 눈만 마주쳐도 부담스러워했다. 여기선 모두가 동료다. 며칠 전 옆자리 동료가 자연스럽게 연애 상담을 해오더라. 기뻤다. 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집에서 20대인 딸한테 과외도 받고 있다.

▷조세열 CFO=취미로 그림을 좀 모으는데 20대 동료가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보고 이것저것 묻더라. 그래서 잘 아는 갤러리 관계자를 불러 사내 그림 특강을 열었는데 동료들 반응이 좋아 뿌듯했다. 어설프게 20대 친구들처럼 행동하기보다는 그들이 궁금하지만 잘 모를 것들을 편하게 알려주면 호흡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스타트업 온 후 개인적 변화는.

▷박종백 사원=오늘 출근하는데 아내가 "당신 요즘 자주 웃는다"고 말해 스스로 놀랐다. 생각해보니 10년 전 임원을 달고부터는 웃으면서 출근해 본 적이 없었다.

▷이준호 공동대표=규모가 큰 회사일 때는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내 회사'라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지금은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크다.

[임성현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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