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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공사중단은 탈법적 국가행위"…첫단추부터 꼬인 `脫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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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원 이사회 무산 ◆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철회가 결정될 때까지 주민들은 한수원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

13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하는 이사회가 예정된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는 오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건물 안팎 곳곳에는 공사 중단을 반대하는 피켓과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내걸려 있었다. 한수원 안에 배치된 10개 중대 800여 명의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경비를 했다. 한수원으로 출입하는 정문은 폐쇄됐고, 본관 건물로 들어가는 3개의 입구도 경찰에 의해 출입이 통제됐다.

이사회 개최 시간인 오후 3시가 다가오자 한수원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오후 1시께 버스 9대에 나눠 타고 경주 한수원 본사에 도착한 울산 울주군 생면 주민 400여 명은 정문 앞에서 공사 중단 반대 집회를 시작했다. "공사 중단이 결정되면 이사들은 각오하라"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 자신 없으면 한수원 사장은 퇴진하라"는 격앙된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주민 대표들이 이관섭 한수원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충돌도 발생했다. 주민 대표들은 한수원 사장과의 면담이 지연되자 본관 건물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상대 서생면주민협의회장은 "이사회 결과에 따라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지만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방침을 철회하는 주민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하겠다는 방침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한수원 노조는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본관 로비에서 공사 중단 반대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앞서 한수원 노조원 10여 명은 이사회가 열리는 본관 11층에서 점거 농성을 했다. 노조는 정부의 일방적인 공사 중단 방침을 규탄했다. 또 이사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본관 출입문마다 노조원 10~20명을 배치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사회를 막는 저지선이 무너지면 다른 곳에 대기하고 있는 노조원을 추가로 투입할 것"이라며 원천 봉쇄 의지를 다졌다. 노조는 또 한수원 조직을 '마피아' 등에 비유해 비방한 환경단체에 대해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준비하는 등 또 다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한수원과 전국전력노조 등 국내 20여 개 전력 공기업 노조도 유인물을 내고 "법적 근거가 없는 초(탈)법적인 국가행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노조는 "탈원전 정책은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며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3개월의 짧은 시간에 토론을 통한 배심원단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은 정부의 부담 회피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심도 있는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최 시간인 오후 3시에 임박해 비상임이사들이 도착하자 수십 명의 노조원들이 일제히 출입문을 막아선 채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결사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사내방송에서는 "직원들은 동요하지 마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됐다. 결국 비상임이사들은 대치한 지 10여 분 만에 되돌아가 오후 3시에 예정된 이사회 개최는 무산됐다. 이사들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서생면 주민과 가진 간담회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는 주민들이 자율 유치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수원 입장에서는 이른 시일 안에 공론화를 끝내고 원전이 건설되기를 희망한다. 만약 공사가 중단돼도 주민과 근로자들에게는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은 문재인정부가 속전속결로 추진 중인 탈원전 프로세스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원전 공사 중단 결정 자체가 초법적인 행태인 데다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부 시민단체의 의견만 받아들여 변칙적인 방법으로 다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원전건설 작업을 일방적으로 멈춰버렸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당은 '탈원전 공론화위원회 중단 촉구결의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로 했다. 이현재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기로 한 국무회의 결정은 위법하다.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필요성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태흠 한국당 최고위원은 이날 "독일은 원전 폐지 논의를 본격화한 이후 원전 폐지를 선언하는 데 25년이 걸렸다"며 "3~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비전문가 손에 맡기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법적 근거 없이 지시를 내린 것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법적 근거 없이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기업에 약 1조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배임죄이자 대통령의 배임방조죄"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이날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 없는 포퓰리즘 탈원전 정책 바로잡기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채익 한국당 의원은 "노무현정부가 신고리 5·6호기 땅을 매입하고 추진했는데 180도 급변해 뒤엎는다고 하면 자기 부정이고 자가당착"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전체회의에서 "국민 열망에 맞는 용기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며 "이렇게 중단되면 관계된 사람은 배임을 묻는 절차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내에서 정치적 분기점마다 여당의 편을 들어줬던 국민의당도 탈원전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비상대책회의에서 "청와대가 원맨쇼를 하듯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범주 기자 / 경주 =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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