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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클라마스 강은 4대강사업의 불행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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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댐 철거가 경제적이다

"댐으로 유속이 없어지면서 녹조가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그 속에서 '폴리킷'이라는 아주 작은 기생충이 엄청나게 증식했는데, 3년 전 바다로 나가는 1~2년생 연어 수백만 마리가 폐사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올해 회귀한 연어가 심각하게 격감했다."

카룩부족(Karuk Tribe) 정부 천연자원부 리프 힐만(Leaef Hilman. 47세) 국장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댐으로 겪은 피해를 진지하게 전했다. 그는 18살에 부족 정부 의원이 돼 조상들이 소중하게 여긴 클라마스 강(Klamath River)과 연어 보호 활동에 나섰다. 힐만 국장은 연어잡이 어부였으며, 강에서 치러지는 부족 전통의식인 '세상재생의식'을 관장하는 사제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부족이 겪은 고통의 역사가 묻어났다.

클라마스 강은 미국 서부 오리곤 남부와 캘리포니아 북부 사이를 흐르는 497킬로미터의 강이다. 자료에 따르면, '재빠름'이란 뜻을 지닌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클라마스 강에는 하류 부근 카룩부족을 비롯해 5개의 원주민 부족이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곳에 수력 발전용 댐 등 6개의 댐이 들어서면서 강은 고인 물이 돼 버렸다. 그것도 독성 높은 남조류가 가득하고 전염병이 수시로 돌아 물고기 떼죽음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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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마스 강 중류에 있는 아이언 게이트 댐(Iron Gante Dam). 발전용이 아닌 방류수 저류를 위한 조절 댑이다. 상류 저수지에서는 독성 물질 마이크로시스틴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의 1만 배가 검출됐다.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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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7종의 연어가 회귀했던 풍요의 강

미국 서부 댐 철거 현장 취재에 나선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일행은 오리곤 주 포틀랜드에서 캘리포니아 주 이레카(Yreka)라는 조그만 도시까지 5번 고속도로를 따라 8시간여를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12시. 당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날 만날 카룩부족 관련 자료를 숙지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이레카에서 카룩부족 사무실이 있는 해피캠프까지는 두어 시간 거리였다. 힐만 국장은 자신들의 부족 사무실에서 우리 일행을 맞아줬다. 사무실은 길이 7~8미터, 폭 0.8미터 정도의 통나무카약과 각종 연어잡이 어구가 전시돼 있는 역사박물관을 두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카룩부족의 역사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레카라는 도시는 1851년 황금이 발견된 곳으로, 매년 '이레카 골드러시의 날'이 열린다. 백인들의 서부 황금 열풍에 피해를 입는 건 원래부터 그곳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자연이었다. 힐만 국장은 "우리 부족은 1850년 유럽인(백인)을 처음 조우했다"며 "그 전까지 우리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자급자족의 경제 방식이었지만, 밀고 들어온 그들은 금광을 만들고, 목재를 가져갔고, 물을 약탈해 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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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룩부족 정부 천연자원부 리프 힐만 국장이 자신들의 조상이 사용했던 통나무카약을 설명하고 있다.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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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은 자연을 공유 자원으로 관리하던 원주민에게 자본주의 방식을 이식시켰다. 근대적 개념의 자본이 있을 리 없는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만든 일자리에 얹혀살았다. 그러다 백인들이 자산을 뺏어 나가면 지역 경제는 몰락해 버렸고, 이런 사이클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원주민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이 약화됐다.

그나마 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풍성한 연어 때문이었다. 힐만 국장은 "봄에 시누크 연어가 엄청나게 떼 지어 올라왔다"며 "봄만 아니라 연중 7종이 대이동을 했다"고 말했다. 클라마스 강 유역의 부족들은 연어들이 최대한 산란할 수 있게 하는 협약을 맺어 자연의 풍성함에 감사하며 지속가능한 강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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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룩부족 정부 천연자원부 리프 힐만 국장. 그는 18살에 부족 정부 의원이 돼 클라마스 강과 연어 보전 활동을 벌여 왔다. ⓒ이철재


19세기 후반 전기가 상용화되고, 서부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연어들이 돌아오던 클라마스 강은 단절되기 시작했다. 클라마스 강 중류 부근에 1918년 40미터 높이의 콥코1댐(Copco 1 dam)이 건설됐다. 1925년에는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콥코2댐(Copco 2 dam)이라는 보조 댐이 콥코1댐 옆에 건설됐다. 이 댐 상류에 22미터 높이의 제이시 보일 댐(JC Boyle Dam)도 들어섰다. 1964년에는 콥코1댐 하류에 58미터 높이의 아이언 게이트 댐(Iron Gante Dam)이 들어섰다. 아이언 게이트 댐 하류 지역이 카룩부족의 영역이었다.

댐으로 막혀 연어 회귀율이 떨어지자 "90퍼센트가 넘는 원주민들이 대부분 빈곤선 이하로 살아갔다"는 것이 힐만 국장의 말이다. 이어 "1960년대만 해도 우리 부족에게는 심장병, 당뇨병, 고혈압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이었다"면서 "어장이 감소하고 연어 섭취가 줄면서 우리 부족민 환자 수가 국가전체 평균의 6배, 8배, 10배를 상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2005년부터 부족이 운영하는 보건소의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이었다.

독성 마이크로시스틴이 기준치의 1만 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이언 게이트 댐을 찾았다. 이 댐은 발전용 댐이 아닌 상류 댐에서 급작스러운 방류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조절 댐이다. "원주민 어부들의 어구가 쓸려갈 때는 못 본 척했는데, 백인 어부들이 항의하자 이 댐을 짓게 됐다"는 것이 이곳에서 만난 카룩부족 정부 천연자원부 산하 수질국의 수질 전문가 수잔 프리키(Susan Fricke, 39세)의 말이다.

프리키 씨는 "이 저수지는 영양분이 풍부한 거대한 욕조 상태로 볼 수 있다"며 "8~10월간 독성 성분을 갖고 있는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 리터당 1만 마이크로그램(1만 ppb) 검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 기준치는 리터당 1ppb. 지난 2015년 9월 우리나라 낙동강에서 기준치의 418배가 검출돼 충격을 준 바 있는데, 클라마스 강에서는 1만 배가 검출된 것이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는 "이 정도면 독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차이가 있다면 클라마스 강은 식수원으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물을 마시는 야생동물과 회귀하는 연어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프리키 씨는 "이 댐을 짓고 나자 바로 녹조가 발생했다"며 "마이크로시스틴이 한 번 생겨나면 305킬로미터 하류의 태평양 입구까지 그대로 내려간다"고 지적했다. 댐 하류 지역에서는 대략 10ppb 정도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는데, "클라마스 강 하류에 사는 민물조개 체내에서는 강물에서 검출된 마이크로시스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 프리키 씨의 말이다.

클라마스 강은 갈등의 공간이다. 미국 서부는 선점주의 수리권 개념을 채택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에게 물 사용의 최우선권을 주는 제도이다. 이것이 오리곤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건조 기후 속에서 대규모 농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이었다. 관개농업에 따라 물 사용량이 증가하자 강을 유지하기 위한 물량이 감소했다. 또한 비점오염원이 증가해 수질을 더 악화시켰다.

2020년부터 철거 계획 진행 중

미국 연방정부는 1973년 멸종위기종법(ESA)을 제정했다. 이 법률에 의해서 미국 북서부의 스네이크 강 하류의 대형 댐 4개(아이스하버, 로어 모뉴멘털, 리틀 구스, 로어 그래나이트)가 철거되기도 했다. 클라마스 강에는 코호 연어와 빨판상어 두 종류(납작코, 긴코) 등 3종의 멸종위기종이 있는데, 법률에 의해서 관개용수 사용이 일부 제한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부시 행정부는 농부들 손을 들어주었고, 그해 강 하구 부근에서 성어 4만~7만 마리가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리키 씨는 "당시가 9월이었는데 적은 물에 너무 많은 물고기들이 꽉꽉 차서 회유를 해 올라가니까 '이크'라고 불리는 세균성 아가미 질병이 돌아 떼죽음이 일어났다"며 "물을 써야겠다는 사람과 자연을 보호해야겠다는 사람 간에 갈등이 늘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3년 전 물고기 떼죽음 때는 멸종위기종도 포함됐다. 지난 2월 카룩부족 정부는 미국 연방 개척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더 많은 유량을 흘려보내도록 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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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언 게이트 댐 상류.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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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점은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댐 철거가 결정됐다는 것이다. 2016년 4월 연방과 주 정부, 원주민 정부 연합, 전력 생산 업체인 퍼시픽코프(PacifiCorp)는 앞서 언급한 퍼시픽코프가 소유한 4개의 댐 철거를 합의했다. 연방정부 의회 승인이 남아 있지만, 2020년부터 철거를 예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소유가 아닌 수력발전 댐에 대해 대략 30~50년에 이르는 사용기간이 만료되면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의 재허가 절차('연방에너지법'에 따른)를 따라야 하는데, 이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 퍼시픽코프 사의 댐들은 어도가 없었다. 어도를 만들고 수질 및 환경 개선 등을 고려할 때 철거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판단이다.

원주민 부족 정부가 과학적인 방식으로 조사 데이터를 만들고 미국연방환경청(EPA) 등 정부 기관들에게 지속적으로 어필한 점도 댐 철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힐만 국장은 "우리는 과학이라는 그들의 무기를 이용해서 그들의 논리를 무찌르는 전략을 썼다"며 "(댐 철거는) 내 일생의 작업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프리키 씨는 "물은 그냥 물답게 흘러야 가장 이롭다"며 "자연에도 좋고, 자정작용을 할 수 있고, 그걸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좋다"고 강조했다.

클라마스 강 사례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16개의 댐으로 저수지가 된 4대강을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클라마스 강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강을 흐르게 하자. 그게 '정답'이다.

기자 :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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