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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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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고래토론] 초등학생이 말하는 ‘어린이에게 필요한 사회적 배려’

이 지면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를 위해 <한겨레21>과 <고래가 그랬어>가 함께 만듭니다.

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을 소개하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격주로 싣습니다.

참여 김은호 박주은 서제원 신은채 오윤(12)_경기도 남양주 줄기씨앗학교

진행 고래가그랬어

사진 양철모 삼촌(바라 스튜디오)


한겨레21

경기도 남양주 줄기씨앗학교 5학년 학생들이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박주은, 서제원, 김은호, 오윤, 신은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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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어. 여성·장애인·노동자·학생·성소수자, 그리고 어린이도 이 사회를 이루는 주인공이지. 그런데 정말 그런 거 같아? 주변의 모든 물건이나 제도가 어린이를 배려해서 만들어졌니?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양한 의견이 있을 거야. 남양주 줄기씨앗학교 5학년 동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눴어.

나한테도 물어봐줄래요?

제원  분명히 내가 여기 있는데, 어리다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경우 있지 않아?

  응, 있어. 엄마·아빠가 나한테 그래. 분명히 내가 먹고 싶은 게 있는데, ‘애들은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러면서 나를 무시해.

제원  어떻게 보면 왕따랑 비슷한 거 같아.

은호  ‘노 키즈 존’ 같은 거도 있어. 어린이는 아예 오지 말라고 해.

주은  노 키즈 존?

은호  전에 <고래가 그랬어>에서 봤는데, 어린이들이 소란스럽게 군다고 가게 같은 데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한겨레21

오윤


  어디 갈 때 내가 의견을 내면 엄마·아빠는 ‘너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걱정 하지 마’ 이러면서 자기들만 이야기해. 특히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끼어들고 싶은데 안 끼워줘. ‘어린이는 아직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해. 그럼 대체 언제 하라는 거야!

주은  음, 나는 어린이라서 투명인간 취급받은 적 별로 없어. 오히려 배려받는 거 같은데!

제원  난 있어. 동네에서 형들이랑 같이 모여 놀았는데 내가 제일 막내였거든. 그래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어.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은 키도 나랑 비슷하고 싸움도 내가 더 잘했어. 하지만 형이니까…. 그 형은 가게 주인집 아들이었거든. 그래서 그 형한테 뭐라고 말도 못했어. 만약에 그러면 형들이랑 같이 못 노니까. 그러다 갑자기 형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야.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은호  어린이뿐만 아니라 제일 늦게 전학 온 애도 투명인간 취급당하잖아.

  어른은 어린이를, 그냥 자기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전부 다 애로 보는 거 같아. 나는 그 점이 정말 싫어.

제원  책이나 영화를 보면 어린이들이 ‘우리도 권리가 있어!’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아.

은채  어린이를 무시하는 어른을 보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손잡이가 너무 높아!

한겨레21

서제원


제원  어른들만 사는 세상인가?

주은  어른만 알아듣는 말도 많아.

은호  장난감이나 뭐 그런 거에 사용설명서 있잖아. 나는 그거 한 번 읽고 이해가 안 됐어. 그거 누구 보라고 만든 거야?

주은  엄마·아빠 보라는 거지, 뭐.

은호  장난감은 내가 가지고 노는데!

  나, 레고 진짜 많거든. 석 달 동안 이만한 레고 만들어봤어.

은호  ‘취급 주의’ 이런 말들, 여섯 살짜리가 어떻게 알아. 결국 아빠한테 다 물어봤다고.

  나, 나! 전에 지금보다 키 작았을 때 기차 타고 엄청 곤란했던 적 있잖아. 내가 책을 진짜 좋아하거든. 책에서 본 적 있는데 손잡이가 닿지 않아서 우산을 탁 걸어 매달리는 장면이 있어. 내가 그걸 진짜 해봤거든. 그랬더니 어른들이 나를 완전 이상한 애로 보는 거야. ‘쟤, 왜 저래?’ 이러는 거 같았어.

제원  그게 문제가 뭐냐면, 아예 안 닿으면 시도도 안 하는데, 조금만 점프하면 손잡이를 잡을 수 있을 때가 있어. 그러면 애들이 점프해서 손잡이를 잡고 거기에 매달리는 거야. 그게 좀 위험하잖아. 나도 옛날에 그랬어.

한겨레21

박주은


주은  그게 점프한 아이들의 잘못인가?

은호  그렇게 하고 싶게 만들어놓은 게 잘못 아니야? 손잡이가 아예 낮게 있으면 매달릴 일도 없지, 뭐.

  사고 나는 애들이 없겠지.

제원  아, 그러면 어른이 다니기 좀 불편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어린이에게 맞추려다 어른들이 엄청 불편해지는 거잖아.

  어른은 어른용 손잡이, 어린이는 어린이용 손잡이가 있으면 되잖아.

제원  그러면 의자에 앉기 불편해지잖아. 고개를 숙이거나 점프해야 하니까 문제가 더 많아질 거 같아.

주은  어른이 좀 참으면 되지 않아? 어린이는 아예 잡을 수 없는 거고, 어른은 조금 불편한 걸 견디는 정도잖아.

은채  손잡이를 조정할 수 있게 하면 어때? 어른이나 어린이도 같이 쓸 수 있게 말이야. 어린이가 손잡이를 잡아야 할 때는 내려서 쓰고, 지나다닐 때 불편하면 올리고. 이렇게, 버튼 누르면 탁탁 조절되게.

제원  그거 좋다. 버튼! 자동!

왜 우리를 위한 건 없지?

제원  대통령선거 때 후보들이 나와서 ‘뭐 해주겠다, 뭐 해주겠다’ 그랬잖아. 우리한테는 뭐 해준다고 했나? 없었나?

  난 한 개 본 거 같아. ‘아동학대 방지’인가, 그거.

은호  난 몰라. 못 봤어. 공약이 엄청 많더라고.

  솔직히 사회에서 어린이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 같아. 우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아.

주은  맞아, 대통령선거 같은 거도 못하고.

은호  야, 그건 솔직히 인정해야지. 우리가 뭘 잘 모르잖아.

제원  어른의 권리는 많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우리는 어른의 보호를 받고, 그래서 못하는 게 많지. 어른은 혼자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한겨레21

김은호


은호  엄마랑 어린이랑 같이 투표소에 들어갔다고 해봐. 어린이가 분명 엄마한테 ‘엄마, 나 누구 찍어?’라고 물어볼 게 뻔해. 장난으로 도장을 막 찍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어린이는 ‘중2병’도 경험하고 철 좀 든 다음에 투표할 권리를 얻는 게 좋아.

  무슨 소리야! 어린이도 투표해야 해. 그래야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지. 어른 수는 점점 줄어들잖아.

제원  한국은 자살을 엄청 많이 하는 나라야. 특히 청소년들!

은호  청소년도 투표 못하거든.

주은  야, 우리가 나이를 더 먹으면 투표권을 얻는 거야.

은호  어린이까지 투표하면 투표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관리하기 힘들지도 몰라.

은채  나도 그 생각에 찬성해. 물론 어린이를 차별하는 건 옳지 않지만, 솔직히 어린이는 생각하는 게 어리다고.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도 보호자와 같이 봐야 하고, 보면 안 되는 것도 있어. 어린이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은  보면 안 된다는 건 누가 정해?

은호  내가! 나의 뇌가!

제원  컴퓨터한테 나이를 알려주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하자.

  그러면 인공지능한테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거잖아.

제원  보호자 동의를 받아서 볼 수 있잖아.

한겨레21

신은채


은채  어린이가 모든 기준에 다 맞지는 않아. 어린이도 한명 한명 다 달라.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성장한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어. 큰 사람 작은 사람 누구한테 맞출지, 아니면 평균을 낼지…. 음, 기준을 어떻게 할지는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주은  어린이가 안 하니까 모르는 거지, 하면 잘할지도 몰라.

은호  어른은,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뭔가를 배우라고 해.

  “저녁 먹기 전에 들어와!” 놀 때 우리 엄마가 나한테 항상 하는 말이야. 어른은 우리가 밥을 많이 먹고 커야 한다고 생각해.

은채  어린이는 말 그대로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고, 어리니까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는 거 같아.

  어린이는 몸집이 작은 어른이란 말도 있잖아. 그게 옳다고 생각해. 어린이는 몸집이 작을 뿐이지 어른이랑 똑같다고.

사회의 기준, 어디에 맞춰야 할까

  벌레나 새도 알에서 시작해. 어른도 옛날에 우리보다 더 작은 아기였다고. 그러니까 어린이를 기준으로 모든 걸 만들면 누구나 다 편하게 쓸 수 있어.

주은  윤이랑 비슷하긴 한데, 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어.

제원  누가 원하는 건데?

주은  모두.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은채  약한 사람이 쉽게 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할 수 있잖아. 예를 들어 손이 불편한 사람도 쉽게 쓸 수 있는 컵이 있다면, 손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잘 쓸 수 있어. 약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강한 사람도 다 할 수 있지만, 반대는 쉽지 않아. 그러니까 어느 정도, 약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제원  돈이 엄청 많이 들 거야.

은호  기술이 발달했잖아. 이런 거 하라고 기술을 발전시킨 거야.

제원  그런 물건이 잘 안 팔리면 망하니까, 사람들이 무서워서 만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소비자가 그런 물건을 잘 사줘야 해. 모든 물건을 어린이도 편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 교양입니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와 만나세요. 구독 문의 031-955-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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