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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던지고 깨부수고…`스트레스 해소방` 직접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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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회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 청년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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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적이 있는가. 나아가 소리를 지르고 싶거나 갑자기 물건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껴봤는가.

얼마 전 젊은층의 스트레스 정도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통계를 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른바 '화병'으로 한방병원을 찾은 20~30대 환자가 2011년 1867명에서 2016년 2859명으로 53% 증가했다. 특히 20~30대 남성 사이에서 발병률이 높아졌다. 2011년 387명에서 2016년 846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청년층 화병의 원인으로 취업·결혼·직장생활 등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를 꼽을 수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살펴보다가 요즘 2030세대 사이에서 '스트레스 해소방'이 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접시나 가전제품들을 던지고 깨부수며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

에디터 본인은 평화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때려부수는 것과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진짜다 ^^) 실제 스트레스가 풀리는 지 체험해볼 겸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지난 26일 서울 홍대에 위치한 '서울 레이지룸(Seoul Rage Room)'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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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을 메운 연장(?)들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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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에 비치된 안전모와 소음방지용 귀마개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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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들어서니 한쪽 벽을 채운 안전모와 소음방지 귀마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각종 연장·무기도 한켠에 전시돼 있었다. 계산대에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라고 했다. 사장 원은혜 씨(여)는 회사 생활을 할 때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공간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러시아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레이지룸'과 '앵거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스트레스 해소방이 생기는 것에 착안해 서울 레이지룸을 열었다. 오픈한 지 3개월 가량이 흐른 지금, 하루 평균 30~5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대체로 2030 젊은 연인들이 이색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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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서울 레이지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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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들은 본인이 다쳐도 업체 측은 책임이 없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그후 짜증, 왕짜증, 빡침, 개빡침, 18 단계 중에서 어떤 단계를 선택할 것인지 물었다. 방안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깰 수 있는 접시·가전제품 개수 등에 따라 가격대가 달랐다. 가장 무난하게 많이들 선택한다는 중간단계(빡침·4만원)을 골랐다. 프린터, 밥통, 선풍기, 라디오 등 다양한 가전제품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고민하다가 2030에게 그나마 친숙한 사무용품인 프린터를 택했다. 그리고 결제했다.

방을 들어가기에 앞서 접시나 가전제품을 깨부수면서 생기는 파편이 신체에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완전무장을 했다. 부직포로 제작된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와 소음방지용 귀마개를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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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왕'이 되기 전 완전무장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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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고 난 뒤 사장님은 신나는 락음악을 틀어줬다.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들뜨며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연장으로는 방망이와 망치가 준비돼 있었다. 가전제품을 부수는 데 힘이 들어가야 해서 그런지 망치는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다.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을지 방안을 둘러봤다. 과녁, 타이어, 고무로 제작된 사람 모형의 마네킹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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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을 명중하며 깨지는 접시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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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볍게 접시부터 깨보기로 했다. 멀쩡해보이는 것을 깨려니 아깝기도 하고 겁도 났지만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냈다. 과녁을 향해 접시를 던졌다. 처음이라 너무 조심스럽게 던졌는지 접시가 깨지지 않았다. 다시 던졌다. 명중하며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 짜릿하긴 했다. 부메랑을 날리듯이 던져보기도 하고 접시를 공중에 던진 후 야구하듯 방망이로 깨기도 했다. 또 두꺼운 유리그릇은 일렬로 바닥에 놓고 망치로 치는 등 그릇을 깨는 데도 나름의 응용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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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에 스트레스 푸는 중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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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든 망치로 타이어를 두들겼다. 망치는 너무 무거워 방망이로 바꿔 들고 마네킹 쪽으로 갔다. 사정없이 마네킹을 쳐봤다. 당신은 혹시 실연을 당했거나, 연인 때문에 속상하다거나, 회사 상사에게 쌓인 게 많다거나, 취업이 안돼 힘든 상태인가. 만약 그럴 경우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을 마네킹에 대입해본다면 조금이나마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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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여 안녕~ 스트레스도 안녕!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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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컷으로 마무으리~!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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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껴놨던 프린터를 부술 시간이 왔다. 망치로 쳤는데 생각보다 제품이 단단해 깨지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고상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살짝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요즘 받았던 스트레스의 원인들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 안의 분노를 손끝, 그리고 망치에 전한 뒤 힘차게 프린터를 내려쳤다. 망치로 내뒹구는 프린터에 '어퍼컷'을 날리기도 하며 박살날 때까지 신나게 처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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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바쳐 사람의 스트레스를 풀어준 프린터의 최후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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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불사른 접시와 가전제품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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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가량의 코스가 모두 끝이 났다. 가격대에 비해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은근히 체력 소모도 커 더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았다.(저질 체력이라 그런지 실제 다음날 팔과 어깨, 등 부분이 쑤셨다)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개운하고 속 시원한 기분은 들었다. 하지만 깨진 그릇 조각, 무참히 파손된 프린터 등 내 희생양들의 잔재를 보고 있자니 동시에 허무함도 몰려왔다. 신나게 놀고 난 뒤에 찾아오는 뭔지 모를 공허함이랄까.

착용했던 장비와 작업복을 벗고 사장 커플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려는 찰나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나 : 그런데요…. 저 접시들이랑 가전제품들은 어디서 구해오시는 거예요?

사장님 :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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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레이지룸 [사진 =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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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룸을 이용할 때에는 자신을 내려놓길 바란다. 그래야 주어진 상황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점을 깨달았을 때 스스로 교훈도 하나 얻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것을···남들을 의식하고 몸 사리다간 현재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취업·연애·직장생활 등에서 실패를 맛봤을 지라도 두려워만 하기 보단 젊음이 주는 패기를 잊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청춘들이여, 파이팅!

[에디터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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