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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기고] 美 행정부, 세이프가드 신중히 접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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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우려했던 통상압력이 전방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필두로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대법 232조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심지어 반도체 품목에 대해서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조사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월풀은 지난 5일자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한국산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입되는 모든 수입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사를 신청했다.

세이프가드 조사는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조사와는 달리 불공정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물량 급증으로 현지 관련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존재하는 경우 취하는 조치이다. 대부분 농수산물 등에 대한 조치이고, 특히 2001년 이후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사문화됐던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월풀이 세탁기에 대해 제소를 한 것이다. 이는 한국 업체들의 글로벌 공급지를 활용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ITC 조사 결과 현지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물량제한 및 특별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월풀은 이미 제소장에서 물량은 국가별 5개년 평균으로 제한하고 초과되는 물량에 대해서는 중국산 반덤핑 관세율(평균 47.8%)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질 경우 한국 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월풀의 세이프가드 제소를 들여다보면 불합리한 사항이 많다.

첫째, 과연 미국 세탁기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존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수요는 주택경기 활황으로 신제품 및 교체 수요 증가로 2012년 730만대 이후 연평균 7.2% 증가해 2016년에는 970만대 수준에 달한다. 월풀의 시장점유율 또한 2016년 38.4%로 수입업체(삼성 16.2%, LG 13.1%)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둘째, 월풀의 북미 매출과 이익은 2012년 각각 96억3000만달러와 8억5000만달러로 영업이익률이 8.8% 수준이다. 이어 지속적인 성장으로 2016년에는 111억5000만달러와 12억8000만달러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11.5%에 육박해 글로벌 가전업체 중 가장 높은 이익률을 실현하고 있다.

셋째, 회사의 현재와 미래가치를 나타내는 주가 또한 2012년 102달러에서 올해 5월 186달러로 1.8배 가까이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월풀은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 내 세탁기산업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면서도 혁신제품을 통한 시장경쟁보다는 반덤핑 및 세이프가드 등 규제를 통해 한국 업체들의 혁신적 제품 진입을 막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 소비자들의 혜택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향유하기 위해 무역구제를 남용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세이프가드 조치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국 산업 보호 목적으로 사용되는 최후의 수단이다. 즉,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으로 판단해 이를 구제하기 위한 방어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 행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근거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수량규제, 관세 인상 등 세이프가드 조치 발동 시 미국 내 유통업체, 소비자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이는 결국 소비심리 감소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행정부가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기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를 시행할 경우 월풀 등 일부 생산자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된다. 그로 인해 미국 소비자의 혜택을 침해하고, 더 큰 손실을 보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 정부와 업계도 다양한 협상 채널을 통해 세이프가드 조치 시행이 미국 소비자들에게도 유리하지 않음을 전달하고, 세탁기 생산국들과 긴밀한 공조대응 체제를 통해 적극적이고 일관되게 대응해야 한다. 특히 한국 정부는 지속적인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으로 인해 한국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제도개선, 규제개혁 등의 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인석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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