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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매경시평] 정권과 재벌의 일자리창출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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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협치(協治)는 참 어려운 일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 때면 협치를 하겠다고 내세우지만 정작 현실 정치에서 국민이 보게 되는 것은 '평행선 달리기', '일방 통과', '국회 공전' 등인 경우가 많다.

필자는 정치인들의 협치보다 더 어려운 협치를 제안하고자 한다. 어렵더라도 그 길밖에는 대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권과 재벌의 협치다. 재벌 보고 정치에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대기업이 함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대기업 자체의 고용창출력이 낮다는 단선적 수치만 내세우며 일자리 창출의 핵심세력이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소기업의 고용확대도 당장 쉽지 않으니까 '비상대책'으로 공무원 일자리를 대폭 늘리려고 한다. 재벌은 일자리 창출의 동반자라기보다 '적폐 청산'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강하다.

그러나 경제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대기업이 투자를 늘려서 중소-중견기업들의 일감을 많이 만들어줘야 이들이 성장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필자는 작년에 낸 저서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에서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투자-고용-분배'를 경영목표로 삼는 새로운 기업군을 만들어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재벌에게 재단 설립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고 재단 소속 기업들을 '1-2부 리그(two-tiered system)'로 나누어, 기존에 있던 1부 기업들은 과거 방식으로 운용하되 상속재산으로는 중소-중견기업들과의 합작으로 상생(相生)의 2부 리그 기업군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은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들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대안이다. 상속세는 거두어서 쓴다 한들 '일회성 지출'에 그칠 경우가 많다. 일자리창출에 집중해서 쓸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재벌이 갖고 있는 역량을 잘 활용하면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낼 수 있다. '1부 리그' 기업들이 그동안 구축한 세계적 경영능력과 마케팅망을 '2부 리그' 기업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역량 있는 경영인과 엔지니어들이 일찍 은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의 역량을 '2부 리그' 기업에서 활용할 기회를 주고, 경영목표만 '적당한 이윤과 고용창출'로 바꾸어주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코스트코는 스스로 이런 목표를 설정해서 세계 2위 유통업체가 되었다.

한국의 상속제도는 가족경영의 씨를 말리게 설계돼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65%의 상속세를 내려면 잘 키워온 회사,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를 먼저 매각하게 된다. 재벌들이 '전환사채 헐값인수', '일감 몰아주기' 등 '변칙'을 한 것도 경영권 승계의 길이 꽉 막혀 있기 때문에 타개책을 찾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중소-중견기업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재벌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회사를 파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한 중견기업인은 "상속세를 내려면 기업을 해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바에야 상속 전에 해체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국내 여론은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세계를 둘러보면 성공적인 재단이 많이 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재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가족경영 승계의 롤모델이다. 포드, 록펠러 재단도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 운영되는 곳들만 쳐다보면 대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단이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역량 있는 인재들이 들어가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 '재난상태'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말 '재난'이라면 한국 경제가 갖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서 극복해야 한다. 이념에 매몰되어 이것저것 제외하고 나면 돈은 돈대로 들이고 결과는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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