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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양선희의 시시각각]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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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제에 맹렬했던 민주당 여의원들

이번 공직 후보자 여성관 문제엔 침묵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찬물을 확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주 날린 트위터 하나가 그동안 진보적 여성정치인들을 지지했던 호의마저 싸늘하게 식혔을 정도였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내정자의 혼인무효 판결문과 관련해 이를 입수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을 향해 “40년 전 자료를 어디서 구하셨냐”며 유출경위를 따진 트위터 말이다. ‘본질’보다 ‘유출’을 문제삼는 그 식상한 정치적 기만술을 민주당 출신 전 여성의원이 활용할 줄은 몰랐다. 정윤회 문건 파동을 ‘문건 유출 사건’으로, 윤상현-최경환 선거개입 의혹을 ‘불법 녹취 파일 유출’로 둔갑시킨 구 여권의 술수에 억장이 무너졌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한데 최 전 의원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최 전 의원만이 아니다. 실은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지금 단체로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이 쌓아온 이미지는 구태적 여성의식과 성적 불평등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여성성의 전사(戰士)와 같은 선명함과 맹렬함이었다. 과거 한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검색한 모습이 포착됐을 때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그의 개인적 일탈을 넘어 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했다. 새누리당을 서슴없이 ‘성누리당’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주요 공직자 청문회에선 후보자의 과거 성희롱 발언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한 일도 여러 차례다.

한데 이번엔 지나치게 과묵하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남자 마음 설명서』나 안경환의 『남자란 무엇인가』의 여성비하 발언 수준은 과거 전례로만 보자면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폭풍 같은 분노를 쏟아놓았음직한 사안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홍준표 전 대선후보가 과거 책에 썼던 돼지발정제를 두고 보였던 그들의 폭발적인 논란을 기억한다. 그런데도 최근 공직자 후보자의 여성 비하 논란과 관련해선 가벼운 공식적 논평조차 내놓지 않아 “민주당 여성의원들 왜 이러나”라는 항간의 비난을 자초했다.

우리는 여성정치인들에겐 여성에 대한 책임감과 리더십을 기대한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인권과 사회적 권리 등에서 극복해야 할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는 마이너리티다. 마이너리티의 대표는 본래 업무 외에도 자신들의 집단을 위해 헌신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여성의 대표인 여성의원들은 정략적 이유를 넘어 여성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개인적으론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수호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입장인 터라 안경환의 저서가 ‘몹쓸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에 대한 판단과 취사선택은 독자의 몫이므로 저자는 그런 책을 쓸 수 있다. 문제는 저자가 특정한 공직에 나가려 한다면 그의 사상은 검증받아야 하고, 책의 내용은 주요 검증 자료가 된다는 거다. 이런 점에서 공직자 검증을 맡은 국회는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여성관이 문제가 됐다면 여성의원들이 더욱 면밀히 읽고 판단과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한다. 한데 여성 문제엔 유독 극렬했던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이 책임을 다했다는 흔적이 없다.

안 전 내정자의 혼인무효 사안은 여성의원들이 선제적으로 그에게 판결문 제출과 해명을 요구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공직자의 사적인 추문도 검증하라는 것이 국회 인사청문회다. 특히 여성의원이라면 혼인무효 판결까지 받은 사항은 여성의 인권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경각심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를 ‘판결문 유출’ 사건으로 왜곡하는 데 여성정치인이 앞장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애타게 염원했던 정권교체를 이룬 후 정권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일 터다. 그러나 마이너리티의 지도자들은 도덕성과 진정성을 잃으면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로 전락할 수 있다. 이번에 보여준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비겁함 때문에 여성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은 의심받게 됐다. 착잡할 뿐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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