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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부모 돈 없어도…" 선진국 놀이터, 노는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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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3살짜리를 위한 사교육이 등장했다. 유치원때 한글은 물론 영어 학습도 기본이다. 초등학생부터는 학원에 시달리는게 일상이다. 시간이 있어도 만만치 않다. 공공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해 놀이도 비용이다. 어느덧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는 사라졌다. 반면 선진국들은 점점 놀이에 주목한다. 잘 놀아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는걸 깨달은 결과다. 특히 자율과 창의, 융합이 생명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놀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 사회의 미래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놀이의 재조명이 절실하다.

[[창간기획- 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①-2. 선진국은 어떻게 노나]

학기 중인 5월 평일 낮에도 헬싱키 곳곳에 놀이터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헬싱키는 63만명(2016년 11월 기준)이 사는 핀란드 수도다.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모래 바닥을 밟으며 거침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를 걷다 보면 놀이터를 만나고 1km도 지나지 않아 다음 놀이터와 마주친다. 놀이터마다 구비된 블록과 플라스틱 미니 삽 등은 모두 국가가 지원한 무료 장난감이다. 덕분에 텅 빈 놀이터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 강국'으로 알려진 핀란드는 아동의 놀 권리 보장에 힘쓰는 대표적 나라다. 대학까지 무상교육 제도가 유명한 핀란드는 '놀이' 역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데 신경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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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의 한 놀이터. 헬싱키 도심에선 숲과 어우리전 놀이터를 쉽게 찾을 수 있다./사진=헬싱키(핀란드)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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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교육 선두주자 핀란드, 놀이도 무료로…놀이의 주인은 '아이'

핀란드처럼 무상 교육의 일환으로 놀이 지원에 주목한 또 다른 곳은 미국 아이오와주다.

미국 동부의 아이오와주 정부는 저소득층 가구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심층 유아발달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다양한 놀이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습득 능력뿐 아니라 사회성, 감정 발달, 건강 서비스까지 포괄적으로 제공한다.

세계 아동 놀이 관련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점 하나는 '아동 주도 놀이'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고 아동 스스로 놀이를 선택하고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활동이 창의성, 책임감, 협동심 등을 기르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헬싱키에서 방문한 놀이터에는 보호자로 나온 어른 1~2명이 있었는데 그들 누구도 놀이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놀이의 '열린 결말'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다.

5살짜리 딸과 놀이터에 나온 마리 수비씨(37)는 "놀이터에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편"이라며 "스스로 놀이의 방향을 바꾸면서 창의력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 놀이 시설에서 만난 플레이워커(아동 놀이를 보조해주는 직원) 역시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을 하자"고 권유하지도 않는다. 아이 스스로 혹은 아이들끼리 놀이를 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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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사이언스 센터(science center) 유치원에서 어린이가 블록을 쌓고 있다. 굉장히 작은 이 블록을 쌓으려면 아이가 굉장히 집중해야 한다. 집중력과 함께 기본 엔지니어링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마련된 놀이다./사진=아이오와(미국) 방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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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부담 없는 '놀이터 아이디어' 쏟아진다…자연 친화적 놀이

땅값이 비싼 도심에 놀이 공간을 만드는 일이 어려운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최근 돈을 아끼면서 도심 놀이터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된다.

런던 자치구들은 시민단체가 합심해 휴일 등에 일부 거리를 놀이터로 만드는 '런던 스트리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차 없는 도로를 만들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간단한 놀이 도구를 구비하는 식이다. 분필 하나만 있어도 재밌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의 창의력 덕에 공간만 있다면 모든 도심 도로가 '최고의 놀이터'로 변신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와 협력이 핵심이다.

호주에서 활발한 '플레이그룹' 활동은 1주일에 한 번 빈 공간을 놀이터로 만드는 데 지역 커뮤니티센터나 교회 등의 지원이 뒷받침한다. 그들의 공용공간을 빌리고 유아교육 경력을 갖춘 지역주민이 자원봉사로 그룹을 이끈다. 놀이기구를 갖추는 건 기부로 충당한다.

호주의 놀이터 전문가인 셜리 와이버 맥쿼리대 교육학과 교수는 "플레이그룹은 지역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에서든 적용 가능한 모델"이라며 "(좋은 놀이터 수가 부족한) 한국에서도 시범적으로 운영해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흔한 동네 놀이터도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서울에서는 흙바닥 놀이터가 거의 사라졌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놀이터마다 모래가 가득하다. 남자 아이들은 삽으로 허리춤까지 모래를 파며 논다. 세련되고 잘 만들어진 놀이기구보다는 투박하지만 나무 질감 등을 그대로 살린 형태가 많다. 몸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이 만지고 기어오르며 위험조차 스스로 경험하는 식이다.

자연 그대로는 아니지만 이를 최대한 살린 호주 놀이터들도 참고할 만하다. 특히 평면적 약 3만㎡에 달하는 대형 놀이터 블랙스랜드 리버사이드 파크가 돋보인다. 이 놀이터를 디자인한 안톤 제임스 JMD디자인 대표가 꼽은 '좋은 놀이터의 조건'은 △상상력 자극 △자발적 행동 유도 △다양한 체험 기회 제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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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워터사이드 어드밴처 플레이그라운드'는 만6~12세 아동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다. 자연친화적 모험 놀이터로 꾸며진 실외 뿐 아니라 실내 놀이 공간도 구비했다./사진제공=워터사이드 어드밴처 플레이그라운드


◇ 놀이와 학습, 뗄 수 없는 짝꿍…잘 놀면 창의성도 저절로 쑥쑥

교육과 놀이의 접목도 자연스럽다. 교육을 위해 놀이를 이용한다기보다 잘 놀다보니 좋은 교육이 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데 놀이는 유효한 학습 방식으로 평가된다.

핀란드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 미하킷은 놀이와 학습 융합에 주목했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코딩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쉽게 다룰 수 있는 '코딩 키트'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놀 거리'를 제공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 코딩을 접목하는 식이다.

6살, 8살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헤이니 카르피넨 미하킷 대표는 "놀이는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한계를 없애줄 훌륭한 도구"라며 "과보호하는 것보다는 자유를 주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놀이를 아동발달 측면에서 보는 연구가 활발하다. 건강한 신체 발달은 물론 정신 발달에도 놀이를 중요한 과정으로 보고 어떤 방식의 놀이가 실제 도움이 될지가 관심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세인트 마거릿 에피스코펄 학교에 있는 유아발달센터의 운영 철학은 놀이에 초점이 맞춰졌다. 100년 이상 이뤄진 유아교육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이 놀이와 활동,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 교육에 가장 효과가 좋다고 강조한다.

센터장인 크리스 로존 유아교육발달학 박사는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며 "교실 밖 교육은 아이들의 신체를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질문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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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워터사이드 어드밴처 플레이그라운드'는 만 6~12세 아동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다. 자연친화적 모험 놀이터로 꾸며진 실외 뿐 아니라 실내 놀이 공간도 구비했다./사진제공=워터사이드 어드밴처 플레이그라운드


*특별취재팀=박종진(독일) 진달래(영국) 김평화(핀란드) 김민중(호주) 방윤영(미국) 기자

특별취재팀=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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