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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열린세상] 우리 언론, 적폐인가/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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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언론은 세상을 향한 창이다. 언론은 일정한 프레임과 잣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뉴스를 전달한다. 문제는 언론이 반드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보도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미국의 허친스위원회는 “이제 사실을 진실하게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에 관한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이면의 진실까지 깊이 살펴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그와 거리가 멀다. 세월호 보도만 해도 그렇다. ‘전원 구조 오보’ 소동까지 빚었다. 당시 KBS 기자들은 “구조 당국의 미흡했던 초기 대응, 사고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부족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못했다”는 성명서를 냈다. MBC 기자들 또한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빠짐없이 보도했지만 정작 현장 상황은 누락하거나 왜곡한 적이 많았다”고 시인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는가. 사실 뒤에 가려진 진실을 보여 주기는커녕 사실 보도조차 제대로 못 했다.

세월호 관련 보도 참사는 최근에도 벌어졌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SBS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차기 정권과 거래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세월호 인양을 3년 동안 방치한 것이 대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SBS는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 방송까지 했지만 만만찮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SBS는 결국 취재와 기사 작성, 데스킹, 게이트키핑 모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것이 이른바 ‘지상파 3사’라는 방송의 수준이다.

정파적 저널리즘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 같은 언론 아닌 언론의 행태를 언제까지 보아야 할까. 사회 공론을 왜곡하는 ‘정치언론’이 너무 많다.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정치 시사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등장한 ‘패널’이라는 사람들의 마구잡이 발언은 언론의 저급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최소한의 공평성이라도 지킨다면 소극적인 의미에서나마 ‘공정방송’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대놓고 정파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한 건 잡았다는 식의 흠집 내기 ‘가차(gotcha) 저널리즘’이 판친다. 어느 종편 진행자는 출연자에게 공직생활 중 취득한 ‘기밀’을 말하라며 죄인인 양 다그치는 한심한 태도를 보여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땅의 언론은 죽었는가.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과 관련해서는 ‘부역언론’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온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라는 본연의 기능을 망각하고 스스로 정치 권력화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오피니언(의견)과 팩트(사실)를 뒤섞어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언론’은 더이상 언론이 아니다. 그 자체로 ‘적폐’다. 오죽하면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방송 개혁을 검찰, 국가정보원 개혁과 함께 ‘3대 개혁’으로 규정하고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합의까지 했겠는가. 방송을 포함한 언론 개혁은 어떤 개혁보다 절실하고 본질적인 것이다. 언론이 사회의 양심으로 제 기능을 다해야 검찰 개혁도 국정원 개혁도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언론 또한 검찰과 마찬가지로 자율적인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공무원 조직인 만큼 강력한 인사와 제도의 혁신을 통해 비자발적이나마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사정이 다르다. 개혁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언론 개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타락한 중세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해성사를 했다. 로마 순례 중에는 예수가 끌려 올라간 ‘빌라도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회개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였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언론 스스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언론이 적폐라면 그것은 국민의 불행이요 국가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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