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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기고]산학을 연계하는 교육혁신을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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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나라는 고등교육의 대중화를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나라이다. 대학교육을 이수한 청년은 많지만,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한 데 따른 인력수급의 불균형이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자리가 양극화되고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생기는 치열한 일자리 경쟁은 학교교육을 일자리 경쟁에 대비하는 과정으로 전락시켜 왔다. 대학의 서열화라든가 명문대 진학을 둘러싼 입시경쟁이 심화되어온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교육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지는 학위 인플레이션으로 고등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청년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부족해진다. 대학교육의 과도한 팽창이 쉽게 가라앉기는 어렵다.

1990년대 이후 고등교육이 대중화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였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서구 선진국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하여 나타나는 어려움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스웨덴은 절반 가까운 청소년들이 중등교육 수준에서 직업교육을 받고 있으며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다. 최근 ‘학교에서 노동시장으로의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모범이 되고 있는 독일 같은 중부 유럽의 나라들도, 고등교육의 대중화에 따른 인력수급 어려움이 크지 않다. 독일은 절반에 이르는 청소년이 도제라는 신분을 갖고 직장과 학교를 오가면서 이원화 직업교육을 이수하는 나라이다.

스웨덴, 독일 같은 서유럽 나라들에서는 왜 청소년들이 흔쾌히 직업교육을 선택하는가? 무엇보다도 직업교육을 이수하면, 노동시장에서 직업생활의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직업교육을 이수한 청소년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많다는 것이고, 일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에서 직업교육은 청소년들이 선택한다. 이론 위주의 대학교육보다 직업교육의 직업 전망을 더 밝게 보기 때문이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일자리 경쟁과 이에 따른 교육경쟁이 어느 나라보다도 치열하다. 일자리 경쟁이 치열하게 지속되는 한 교육혁신을 이루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숙련전략(Skill Strategy)’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교육훈련을 필요로 하는 노동시장의 혁신을 포함하는 교육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직업교육이 중시되는 노동시장은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볼 수 있는 ‘근로조건에 격차가 크지 않은 노동시장’이나 ‘노동자들의 전문성이 존중되는 직업별 노동시장’이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타협하여 역사적으로 만들어온 그 나라 특유의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동시장 모델이 쉽게 이식되고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와 관행을 구축해 나가기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가능한 범위에서 개선해 나가는 개혁을 추진한다면 정책적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교육훈련의 주체는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교육계와 교육훈련을 이수하는 개인, 교육훈련을 필요로 하는 산업계이다. 선진국의 경우 교육훈련에 산업계가 참여하는 제도는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다. 도제교육을 비롯하여 직업교육은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운영하는 것이 상례이다. 인력개발기금을 노사가 관리하는 산업별 훈련기금제도(STF), 기업의 인력 개발을 지원하는 산업별 숙련위원회(SC) 등도 좋은 예이다.

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숙련전략’은 교육훈련을 공급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주체들의 광범위한 논의에 토대를 두고 도출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육훈련의 주체로서 산업계의 역할과 책임이 커져야 한다. 교육의 혁신과 노동시장의 혁신을 함께 추구하여 산학 연계를 제고해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교육혁신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이다.

<이선 전 한국노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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