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차출된 소년들, 그 어머니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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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수백 개의 아연관들을 보았다.
아연관들은 햇빛을 받아 아름답고도 무섭게 빛났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죠?
왜 우리 아들이 아연관에 담겨 와야 해요?
밤이면 모든 이들을 저주하다가
아침이 오면 아들 무덤으로 달려가 용서를 빌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은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 그리고 인류가 벌이는 가장 잔혹한 범죄인 전쟁의 폭력성과 부조리에 대해 쓴 작품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4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곳곳을 돌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군과 '아연 소년들'이라 불린 전사자(소년병들의 유해가 '아연'으로 만든 차디찬 관에 담겨 돌아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들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500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년병들의 어머니들은 어린 아들을 전쟁에 보낸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되면 아들이 아연관에 담겨 돌아온다'는 소문들 속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참전자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심도 있게 인터뷰하며,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친구와 어머니를 끔찍이 생각했던 평범하고 어린 소년들을 전쟁이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실제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왜 몇만 명의 소년들이 아연관에 담겨 주검으로 돌아와야 했는지를 파헤친다. 전쟁의 광풍에 휩싸인 어린 소년들과 어머니들의 절절한 절규는 전쟁이 아이와 여성, 인류의 가장 여리고 보호해야 할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아연 소년들'을 출간한 이후, 그간 신화화되고 영웅시되었던 국가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고 참전군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러나 민주적인 의식을 가진 시민들과 전 세계에서 알렉시예비치를 지지하는 작가와 독자들의 노력으로 재판은 종결되었다.
내 책 '아연 소년들'에서는 어머니들의 사연과 기도가 가장 가슴 아픈 페이지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전사한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지요… 어머니들의 슬픔과 고통 앞에선 어떤 진실도 무색해집니다.
‘누가 죄인인가?’ 대체 이 영원한 질문을 얼마나 더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 나, 그리고 그들. 문제는 다른 곳에, 즉 우리들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택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쏠 것인가, 쏘지 않을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침묵하지 않을 것인가?’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저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서는 거리를 지날 수 없을 때가 많은 이 불완전한 세상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저는 제 책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할 수도, 또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진실을 위해서 말이지요!
_‘아연 소년들’에 대한 재판에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진술
이 전쟁이 소년들의 전쟁이었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또한 어머니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들은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매일 전쟁터로 편지를 보낸다. 아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빼내오기 위해 고위급 관료에게 무릎을 꿇고, 뇌물을 찔러넣고, 매일 교회에 가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도 바로 어머니들이다. 아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해도, 살아 돌아와도, 어머니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아들의 무덤가에 살다시피 하든가, 신체적·정신적 불구가 된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전투를 치르듯 일상생활을 이어나간다.
자국민을 전쟁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국가는 국민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전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2차세계대전 때나 사용했던 무겁고 더운 구식 군복을 지급하고, 유통기한이 몇 년은 지난 통조림이며 구더기가 끓는 식량을 배급해 병사들은 만성 영양부족에 시달리며 이가 빠지기까지 한다. 싸우다 죽는 병사들보다 약이 부족하고 의료진이 부족해서 죽는 병사들이 속출한다. 유공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약속된 보상 역시 지켜지지 않는다. 무수한 소년들, 어머니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국가는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기만 할 뿐, 국민들을 책임지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언론을 검열하고 감시·통제하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끔 선전하는 것에만 열을 올린다. '아연 소년들'은 전쟁에서 승전국과 패전국은 존재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든 개개인의 국민들은 국가가 제시하는 이념이나 대의에 희생되어 고통받을 뿐이라는 진실을 다시금 조명한다.
저자는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속에서 스러져간 젊은이들을 영웅으로 박제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맞서 진실을 지키고자 했다. 전쟁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고통이고 누군가의 비명이며 누군가의 희생이거나 범죄라는 진실을. 그리고 그 가운데 다른 누구보다도 고통받는 존재들은 어린 소년들, 어머니들, 여성들이라는 것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512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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