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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수가 아니다. 정말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신의 한 수다."
알파고가 흑 119수를 뒀을 때 사이버오로에서 해설을 맡은 최철한 9단은 "감탄이 나오는 행마"라며 "소름이 돋는다"고 표현했다.
새로운 두뇌 학습 방법으로 진화한 새 알파고(알파고 마스터)는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맞붙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바둑을 선보였다. 상대를 한 방에 다운시키는 '카운터 펀치' 같은 극강의 수는 없었지만 한 수 한 수가 그대로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바둑판을 휩쓸고 다녔다. 특히 이곳저곳에서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을 때 알파고는 무적이었다.
바둑판 전체를 꿰뚫는 천리안 같은 안목은 알파고의 최대 무기였다. 그건 인간 바둑이 흉내 낼 수 없는 '알파고류'라고 할 만했다. 반면 '인간 바둑 최강'이라는 중국의 커제 9단(20)은 예전 호기로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허둥대다 허무하게 백기를 들었다. TV 중계 해설을 맡았던 이세돌 9단은 그런 커제를 두고 "너무너무 고생한다. 가슴 아픈 바둑이었다"며 안쓰러워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25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 커제 9단과의 3번기 제2국에서 일방적인 바둑을 펼치며 15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사실 이날 대결에서는 '혹시나'하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틀 전 1국에서 커제가 1집 반밖에 밀리지 않았고, 커제가 백을 쥐었을 때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혹시나 '인간의 반격'이 성공할 수 있지 않나 희망을 품게 했다. 커제는 백을 잡았을 때 승률이 흑을 쥐었을 때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높아 '백(白)제'라고도 불렸다. 2015년에는 백을 잡고 34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1국을 마치고 알파고를 '바둑의 신' 같다고 했던 커제는 이날 평소에는 두지 않았던 적극적인 수를 들고 나왔다. 초반 몇 수까지 알파고를 따라했던 흉내 바둑도 어떻게든 한번 이겨보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바둑은 커제의 생각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움직였다. 예상 외의 수를 두고 이곳저곳에서 흔들기를 시도한 것은 오히려 커제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알파고는 오히려 가장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신의 한수'를 잇따라 터뜨렸다. '인간' 커제가 나무만 보고 바둑을 둔다면 '인공지능' 알파고는 전체 숲을 보면서 바둑을 두는 꼴이었다.
알파고는 평소 인간 고수가 두는 바둑의 수순을 완전히 흔들었다. 지금 당장은 쓸데없는 수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몇 십 수 후를 대비하는 신의 한 수들이 됐다. 균형과 전체 바둑판을 읽는 힘은 인간 바둑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신의 경지로 들어간 듯했다.
알파고의 흑 119수는 커제에게 남은 실낱같은 희망마저 짓밟는 신의 한 수였다. 이후 망연자실한 커제는 좌하귀 패를 걸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봤지만 알파고가 간단히 패를 정리하면서 승부도 일찌감치 끝이 났다. 1년 전만 해도 패를 유독 싫어하던 알파고였지만 이제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고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실버 딥마인드 수석과학자는 전날 "현재의 알파고는 작년 이세돌 9단과 대결할 때 사용했던 버전에 3점을 접어주는 수준"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제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인간의 승리는 이세돌 9단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계획된 알파고와 커제의 3국은 27일 같은 장소에서 계속된다.
한편 이날 중국 우전과 실시간 이원 생중계한 간담회에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는 바둑을 두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인간 수준의 지능을 보유하려면 아직 부족하다"면서 "상상력이나 기억력, 언어 등에서는 알파고가 더 배워야 하고 딥마인드도 수년에 걸쳐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통제성 우려에 대해서는 "그 목표는 인간이 설정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알파고는 딥러닝 기술로 스스로 학습하지만 그 목표는 인간이 설정하는 것이고, 현재는 바둑 경기에서 이기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과 대국했을 때보다 석 점 더 세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파고가 스스로 대국을 했을 때라고 부연했다. 실버 수석과학자는 "이세돌 9단과 대국할 당시 알파고와 지금의 알파고가 연습을 했을 때의 이야기"라면서 "인간 바둑기사와 대국했을 때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오태식 기자 / 조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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