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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광산 채굴 멈춘 엘살바도르.. IT 환경오염 해법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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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첫 금속 채굴사업 금지

제련 때 독성 폐수 다량 배출

지표수 90% 이상 오염에 결단

‘물은 금보다 귀하다’ 시민의 힘

#2

광물-전자제품 폐기물에 신음하는

러시아-잠비아 등에 희망 메시지
한국일보

2016년 인도네시아 좀방지역의 한 전자폐기물 집하장에 한 소녀가 서있다. 그린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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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엘살바도르 의회는 세계 최초로 자국 내 금속자원 채굴사업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물은 금보다 귀하다’를 모토로 수질 및 토양 오염을 야기시키는 무분별한 광산채굴로부터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수십년 간 싸워온 결과다. 지표수 90% 이상이 독성화학물질, 중금속 및 광산 폐기물로 인해 오염되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광업으로 벌어들이는 외화 등 경제적 이익이 과연 누구의 미래를 그리고 삶을 보장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시민 수천명이 ‘채굴 그만, 생명으로 (No to mining, Yes to life)’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덕분이다.

시민들의 거센 목소리는 엘살바도르에서 지하 금속 광물채굴은 물론 재래식 노천에서의 금속 광물채굴까지 전면 금지시켰다. 자원 채굴ㆍ제련과정상 환경 오염, 즉 황산 및 질산과 같은 강한 화학약품 사용과 추출과정에서 다량의 독성폐수, 방사능 오염수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의 이러한 성과는 전자기기 부품과 인쇄회로 기판에 사용되는 팔라듐 생산의 핵심지역인 러시아 노릴스크와 납-아연 생산 핵심지역인 잠비아의 카브웨이 등 광물에서 비롯된 폐기물로 엉망이 된 오염지역들에 적잖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줬다. 일본 도쿄 유엔대학(UNU)연구에 따르면 2014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전자폐기물 4,180만톤이 배출됐는데 이 중 300만톤이 소형 IT산업 폐기물이었다. 폐기물 대부분은 비공식적으로 재활용되거나 일반 쓰레기와 함께 매립되거나 불법적으로 수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류의 풍족한 삶을 위해 광물로 만들어진 IT제품들이 종국적으로 삶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폐기물은 존재 자체도 문제지만 국제적인 거래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1992년 발효된 ‘바젤협약’은 유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과 처리를 엄격히 금하지만 이를 제대로 준수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자기기 최대 소비국 중 하나인 미국 조차 바젤 협약 비준을 피하면서 자국 전자폐기물을 다른 나라로 떠넘기고 있다. 지난해 바젤협약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국제 NGO인 BAN(Basel Action Network)은 미국에서 200여개 가전제품에 GPS를 부착해 재활용 업체에 반납한 뒤 추적한 결과 상당량이 홍콩으로 반출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자폐기물 집산지라는 오명을 썼던 중국 광둥성 귀유의 자리를 홍콩이 물려받은 것이다.

전자폐기물을 가장 많이 양산하는 골칫거리는 지난 10년간 약 71억대가량이 생산된 스마트폰에서 비롯되고 있다. 제조사들이 선전하는 스마트폰 수명은 약 3년이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기간은 2년 남짓. 카메라부터 인공지능까지 탑재한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스마트폰 수명과 교체주기는 생각보다 짧다. 온라인 통계ㆍ분석 사이트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은 조금씩 다른 라인의 스마트폰 모델 31종을, 레노보는 26종을, 화웨이는 22종을 출시했다. 다른 기업들도 대동소이하다. 신제품들은 한 달만 지나면 구형이 된다. 혁신이 거듭될수록 자원은 고갈되고 전자폐기물은 쌓여간다.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한국일보

2016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그린피스 스마트폰 수리 이벤트(repair cafe)에서 참가자들이 스마트폰을 직접 고쳐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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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지난 4월 애플이 자사 전 제품을 재활용 원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새로 채굴된 광물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폐제품에서 자원을 뽑아 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재생지 사용을 늘려온 제조업체는 있었지만, 제품의 모든 원료를 재활용품으로 충당하고, 궁극적으로 채굴된 신자원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물론 애플의 선택이 궁극적인 답은 아니다. 재활용 원료 사용이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의 목마름을 해소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멀쩡한 전자기기들이 “수리가 어려워서”,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안 돼서” 버려진다.

NGO들도 행동에 나섰다. 전량 폐기될 예정이었던 ‘삼성 갤럭시노트7’ 430만대는 그린피스의 요구로 사측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품(배터리)만 교체해 다시 쓰거나, 친환경적 공정을 통해 금속을 추출한 뒤 재활용하도록 방침을 바꾸었다.

이제는 제조사에 끌려다니며 제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희망에 따라 고쳐 쓸 수 있도록 수리 매뉴얼과 부품을 제공하고 수리 도구를 규격화하라고 시민들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롭게 출시되는 모든 전자기기를 분해해 얼마나 고쳐 쓰기 쉽도록 제조됐는지를 평가하고, 제조사가 지적재산이라며 공개하지 않는 수리 설명서를 제공하는 ‘iFixit’과 같은 단체들의 활동도 주목된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독일, 중국, 멕시코에서 진행한 ‘리페어 카페'는 시민, 자원봉사자, 전문수리업자가 함께 모여 스마트폰을 직접 고쳐보는 행사였다. 현 전자제조업계는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패널을 부착,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패널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디자인을 유지하는 등 제품수명을 짧게 하는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자원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행사는 능동적으로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왜 제품 디자인이 바뀌어야 하는지, 우리가 잃고 있는 권리는 무엇인지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스마트폰 분리 분해가 쉬운 조립식 모델이 나오고 있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에서 채굴된 자원만을 이용하는 페어폰 같은 기업도 등장했다. 점점 더 많은 기업과 시민들이 ‘환경’이라는 변수를 소비-생산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1%인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이인성ㆍ그린피스 IT 캠페이너
한국일보

이인성 그린피스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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