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0 (수)

그래도 5월은 끈끈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충청일보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5월은 가족관계를 기름지게 하는 달이다. 어린이ㆍ어버이ㆍ스승의 날에 성년과 부부까지 서로를 공감하는 '가정의 날들'로 묶었다. 다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발빠른 적응인지 몰라도 요즘 아이들 커가는 걸 보면 질겁할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서 동심(童心)보다 노심(老心)으로 진동하니 더욱 그렇다. 팔남매 어머니인 우리 엄마는 일흔 넘자마자 저 세상 고운 화장을 하셨다. 브랜드 1순위가 '우애'셨지만 자식 앞에선 유독 착시(錯視)를 자주 겪으셨다. 생전, 고해할 곳이 없는 것처럼 전화기 한 번 잡으시면 재탕, 삼탕으로 울여내던 말씀도 어머니의 머나먼 장송 준비란 걸 눈치 못 챈 바보다. 필자 역시 두 딸의 애비가 됐고 그 딸들이 다시 엄마역할에 드니 이제야 '부모별곡' 몇 줄쯤 두 눈을 붉힌다.

셰익스피어 작품 '리어왕'을 읽다 보면 "효도할 줄 모르는 새끼야 말로 독사 이빨을 키우는 것"이란 메시지를 발견한다. 부모 팔꿈치를 물어뜯을 불효 때문이다. 섬뜩할 정도로 이곳저곳에서 가족 붕괴 굉음을 듣는다. 유산관련 송사에 휘말려 부모와 자녀가 원고 피고로 법정에 선다. 가늠조차 어려운 자식의 항변을 침묵으로 지키다 어미 쪽에서 먼저 백기를 든다. 형제자매의 경우 더 죽기 살기다. 가정ㆍ가족 추락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만시지탄(晩時之歎) 실화다.

변인이야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 가슴 한복판에서 영원히 사시는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卒)로 보는 어긋난 관계도 있고 생각잖은 불통에 자식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즐비하다. 피붙이끼리 할퀴고 생채기 난 재활은 오랜 시간을 두고도 아물 줄 모른다. '자식 믿지 마라, 자식 주지 마라, 자식과 함께 살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마라'며 후회하는 부모들의 응축된 유행어가 금언처럼 박힌다. 가정의 바탕은 사랑이요, 그 무엇과 대체 못할 부모님 품에 갸우뚱할 사람은 없으리라. 건전한 가정일수록 가족 간 감정 표현이 자유롭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나이 적은 사람과 많은 사람 간 대화중, 논리적으로 딸린다 싶으면 다짜고짜 '너 몇 살인데 버릇없다. 가정교육을 받기나 한 거냐?'라고 뭉개는 꼴불견 역시 무지막지한 횡포요 부끄러움이다. 세대의 경계선이 무너질까 두려워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도 정답임을 우긴다. 시대가 바뀐 줄도 모르고… 예절은 자기보다 나이 적은 사람에게만 강요된 일방 규칙일까.

앉을자리, 설자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대접받는다. 다행히 우리 사회의 세대를 받드는 근육은 아직 단단하다. 나이 들었다고 모두 천덕꾸러기나 꼰대, 재앙 덩어리가 아니다. 체면을 팽개친 사람보다 되레 5월을 미안해하며 진실의 결기가 곧은 어른 또는 어르신이 훨씬 많은 이유다. '인간관계'야말로 5월을 달굴 피붙이의 정의 아니던가? 그래도 5월은 어느 때보다 끈끈했다.

충청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