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유 때문에 노후자금 준비는커녕 퇴직연금마저 ‘방치’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은행 예금에 목돈을 넣어두기만 해도 10%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있었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방치’는 곧 ‘리스크(Ris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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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시점 설정하면 자동으로 자산배분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요즘과 같은 저성장·저금리 상황에서는 수익률이 낮은 원금보장형 상품만으로 은퇴자산을 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으로 수익률을 높이지 않으면 길어지는 노후를 대비할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퇴직연금 수익률(2016년 기준, 연 1.7%)로는 물가상승률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다.
이미 한국인들의 노년은 매우 가난하다. 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이 평균 가처분 소득(지난해 4인가구당 월평균 가처분소득 358만8000원, 1인가구당 월평균 가처분소득 142만원)의 50% 미만인 인구 비율을 뜻하는 노인빈곤율이 49.6%로 세계 최고다. OECD 평균(12.4%)의 4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가난한 노년을 면할 수 있을까. ‘오래 일하는 것’이 최선의 답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앞날을 장담하지 못한다. 어쩌면 몹시 아플 수도 있고 어쩌면 보다 빨리 퇴직할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일찍, 부지런히, 멀리 보고 준비해야 한다.
이런 시기에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마치 짠 것처럼 함께 들고 나온 상품이 바로 TDF(타깃데이트펀드)다. ‘타깃데이트펀드’라는 이름은 ‘날짜를 겨냥한 펀드’라는 뜻인데, 여기서 ‘날짜’는 은퇴 시점이다. 은퇴 시점을 설정하면 생애주기별 자산배분 프로그램(Glide Path)에 맞춰 자동으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정해 준다. 주로 5년 단위의 여러 시리즈로 출시돼 투자자가 시리즈 중 목표 은퇴시기에 해당하는 펀드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펀드명에 2020, 2025, 2030, 2035와 같이 목표은퇴시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1980년생이고 60세에 은퇴할 예정이라면 은퇴시기가 2040년이므로 TDF2040에 가입하는 방식이다.
은퇴까지 남은 투자기간이 긴 TDF2040은 수익성에 초점을 두고 주식의 비중을 높게 유지하고, 시간이 경과되어 은퇴시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주식의 비중은 줄인다. 대신 채권과 같이 주식에 비해 기대수익률은 낮지만 변동성도 낮은 자산의 비중을 늘려 나간다. 김정훈 삼성자산운용 연금사업본부장은 “일반 투자자들도 스스로 자기 은퇴시점에 맞춰 여러 곳에 분산 투자할 수 있지만 장기간 글로벌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개인이 다 챙기는 건 어렵다. TDF는 전문가들이 이런 작업을 대신해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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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원칙에 충실한 운용 TDF
펀드평가사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4월 16일 기준으로 국내 출시된 TDF의 설정액은 1400억원을 넘어섰다. 작년 4월 삼성자산운용이 가장 먼저 ‘TDF’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한 펀드는 출시 1년간 800억원을 끌어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설정 이후 수익률도 8%로 우수한 수준이다. 이어 지난달 TDF를 출시한 한국투자신탁운용도 한 달 만에 436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KB자산운용은 오는 6월, 한화자산운용도 상반기 중 TDF를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 5대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TDF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상품 경쟁에 나서기 시작하면 전체 설정액도 가파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자산운용사들이 TDF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고령화의 가속화로 연금 시장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방치된 채로 몸집만 커져가는 퇴직연금 시장을 잡기 위해 자산운용사들이 내놓은 히든카드가 바로 TDF인 것이다.
TDF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바람직한 투자 원칙’에 충실한 상품이다. 그 원칙은 ▲글로벌 자산배분(분산투자)할 것 ▲시장 상황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조절할 것 ▲장기적으로 투자할 것이다.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들은 직접 자산을 배분하고 주기적으로 시장 상황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선진국 주식, 신흥국 채권, 원자재, 부동산 등을 적절히 섞어 투자하고 또 적절한 시기에 매도하려면 만만찮은 시간과 품이 든다. 운 좋게 한두 해 수익을 낼 수는 있어도 수십 년간 꾸준히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펀드는 전부 알아서 해준다. 글로벌 자산에 골고루 투자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연령대별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정해 준다. 젊을 때는 주식 비중을 늘려 고위험을 감수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고 은퇴한 뒤에는 채권 비중을 늘려 모아놓은 원금을 까먹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굴리는 식이다. 시장 상황이 급변할 때에는 전문가들이 그때그때 리밸런싱(자산 배분 조정)도 해준다.
투자자가 자금을 넣어두고 잊어버려도 된다는 게 이 펀드의 핵심 콘셉트다. 그래서 한국투자신탁운용은 펀드 이름까지 ‘한국투자TDF알아서펀드’로 지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10년간 1000조원이 넘게 팔린 히트상품이다. 그런 만큼 성과도 검증된 편이다. 삼성자산운용의 TDF가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캐피탈그룹 TDF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6.6%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TDF가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티로프라이스 TDF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5.5%다.
보수적으로 5.5%라는 수익률을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 연봉 3281만원에 대입해 계산해 보자. 초봉이 2000만원인 A씨가 32년간 직장을 다닌 뒤 40년간 연금을 수령한다고 가정하면 TDF에 가입할 경우에는 매월 81만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A씨가 기존 퇴직연금(연 수익률 1.7%)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는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매월 33만원에 불과하다.
김정훈 삼성자산운용 연금사업본부장은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노후자금을 모으냐고들 묻는다. 그런데 없는 돈을 만들어 투자하라는 것이 아니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라면 기존 퇴직연금만이라도 TDF와 같은 상품으로 갈아타는 등 최소한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퇴직해도 설정해 둔 시점에 수령해야 유리
현재 국내 판매 중인 TDF는 크게 두 종류로 재간접 펀드와 직접 운용 펀드로 구분된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한국형TDF’,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TDF알아서펀드’는 각각 미국 TDF 전문 운용사인 캐피탈그룹(미국 4위), 티로프라이스(미국 3위)와 제휴해 출시한 재간접 펀드다. 곧 상품을 출시할 KB자산운용과 한화자산운용도 해외 TDF 전문 운용사와 제휴를 맺고 재간접 펀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윤성혜 한투운용 퇴직연금마케팅 팀장은 “글로벌 자산배분을 위해서는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와 리서치 역량이 필요하다”며 “전문 운용사와 제휴함으로써 그 노하우를 활용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자산배분형·전략배분형 TDF’는 자체 네트워크만을 활용해 직접 운용한다. 최경주 미래에셋운용 마케팅부문 사장은 “목표시점에 원금손실이 최소화되도록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해 위험자산 비중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TDF가 다른 연금 상품에 비해 특별히 수수료가 높지는 않을까. 삼성한국형TDF시리즈의 퇴직연금 클래스(Cp) 총보수는 0.67~1.1%이고 한국투자TDF알아서펀드의 퇴직연금 클래스(C-R) 총보수는 0.39~1.09%다. 작년 DB형과 DC형 퇴직연금의 평균 운용 수수료가 각각 0.53%, 0.54%임을 감안하면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 노후대비는 TDF 하나만으로도 충분할까. TDF 운용사와 판매사들은 노후 상품으로 TDF 하나만 가입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국내외 주요 자산에 골고루 투자하기 때문에, 이 펀드 하나만 가입해도 사실상 모든 부문의 투자를 하는 셈이란 것이다. 노후 자금을 잃을 위험을 줄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상품인 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10~20% 안팎의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다른 상품을 추가로 알아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일종의 연금이지만 연금 계좌뿐만 아니라 일반 계좌를 통해서도 투자할 수 있다. 연금계좌의 경우 연간 납입금액 한도가 1800만원이라 그 이상의 목돈을 한번에 투자할 때는 일반 계좌를 통해야 한다. 다만 연금 계좌에서 투자하면 과세이연 효과가 발생한다. 펀드 운용 중에는 세금이 붙지 않고 연금을 받을 때 과세하는 것이다. 연금 수령 시 세율은 수령 시기에 따라 3.3~5.5%다. 반면 일반계좌에서 투자하면 수익이 생겼을 때 소득세 15.4%를 부담해야 한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가입자가 설정한 은퇴 시기와 실제 은퇴 시기가 크게 어긋나는 경우다. 60세에 은퇴할 줄 알았는데 조기퇴직을 하게 됐다면 TDF의 주식 비중이 비교적 높아 위험이 큰 상태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은퇴시점에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이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이 겹치면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윤성혜 팀장은 “이럴 경우에는 원래 설정한 시기에 수령할 수 있도록 최대한 수령시기를 늦춰 손실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면서 “TDF 투자금 외 별도 유동자금을 일부 운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효혜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0호 (2017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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